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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종합저축 · 퇴직연금에 ‘쏠림현상’ 수위 넘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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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뉴스 분석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이 ‘쏠림현상(Herd Behavior)’을 유발하는 금융회사들의 과당 경쟁에 대해 경고했다. 처음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이번엔 검사권을 동원해서라도 강력 대처하겠다고 한 점에서 강도가 다르다.

그는 25일 월간정책평가회의에서 “쏠림현상은 금융시장의 병폐로, 결국 부작용을 유발하고 국민 피해와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며 “필요하면 부문검사(특별검사)를 통해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지목한 현상 가운데 대표적인 게 은행들의 주택청약종합저축 유치 경쟁이다. 우리·신한·하나·기업은행과 농협이 지난 6일 출시한 주택청약종합저축의 가입자는 22일 현재 463만8000명으로 집계됐다. 영업일 기준으로 매일 평균 500억원 가까이 몰렸다. 당초 은행권에선 300만 명이 한계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곧 500만 명 돌파도 낙관하고 있다.

‘만능통장’이라는 상품상의 매력만으로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면 굳이 금감원장이 나설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은행들의 변칙적인 유치 경쟁에 있다. 한 시중은행의 10년차 직원인 정모(38)씨는 “1인당 200~300계좌의 할당량이 떨어졌다”며 “연말 고과에도 반영되기 때문에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백방으로 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씨는 한동안 찾지 않았던 고교·대학 동창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가족의 지인들까지 총동원했지만 할당량의 절반밖에 채우지 못했다. 이런 식의 영업 탓에 미성년 자녀를 포함해 가족 전체가 가입하는 사례가 많다. 회사원 강모(44)씨는 “친구의 강권에 못이겨 초등학생 자녀 두 명과 아내까지 4명 모두가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은행들에 과당 경쟁을 자제하라고 당부했지만 별 효과가 없다. 김영대 금감원 은행서비스총괄국장은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직원에 대한 과도한 부담, 불완전 판매 등에 대해 점검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퇴직연금을 둘러싼 은행·보험사·증권사의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지난해 말 은행들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점유율을 48%로 높이자, 위기감을 느낀 일부 증권사들이 파격적인 수수료 할인 등을 내세우며 공격경영을 펼치고 있다.

또 저축은행들의 정기예금 금리인상 경쟁이 재연될 조짐이다. 은행들이 하이브리드채권 등 고금리 채권으로 돈을 끌어가자 위기를 느낀 저축은행들이 1년제 정기예금 금리를 연 5%대로 올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경쟁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금융회사들의 경쟁은 곧 소비자의 이익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이 많이 풀려 있는 상황에서 금융사들 사이에 과열 경쟁이 일어나면 금융시장의 특정 부문에 작은 거품이 낄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체력의 범위를 넘는 경쟁을 벌이다 금융회사들이 부실해질 경우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소비자도 피해를 볼 수 있다. 경쟁을 유도해야 할 감독당국이 자제를 하라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금융연구원 김동환 실장은 “과당 경쟁에 따른 후유증은 금융회사 스스로 잘 알고 있다”며 “감독은 불완전 판매 여부 점검과 같은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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