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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탐방 ⑤]경기도 안산 '들꽃피는 마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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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묻는다. 하나의 기분은? "우휴."

학생들은 다같이 "우휴"를 외치며 한숨을 쉰다.

또 선생님이 묻는다. 보라돌이의 기분은? "아이참"

학생들은 또 "아이참"을 외치며 보라돌이의 허전한 기분을 이해하려 애쓴다.

다시 선생님이 성철이의 기분을 물었다. 성철이는 한숨을 쉬며 피곤하고 졸음이 오는 얼굴이다.

학생들은 똑같이 한숨을 쉬더니 뒤로 넘어져 잠깐이나마 피곤한 심신을 달랜다.

▶ 함께 몸을 뒹굴며 협동심과 일체감을 키워가는 들꽃 학생들.

이어 게임이 벌어진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바닥'을 외친다.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교실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린다.

선생님이 '둘'을 외치자 둘씩 짝을 짓기 위해 교실안은 아수라장이다.

이렇게 한시간 반 동안 교실안은 선생님과 학생들이 친구처럼 웃고 떠들고 상대방 핀잔주고 씨름하느라 정신없다.

경기도 안산시 와동에 위치한 '들꽃피는 마을.학교'의 인성교육 '나를 알기'수업은 이렇게 진행된다.

▶ 들꽃 학생들이 국악인 장고치기 연습을 하고 있다.

남의 기분을 먼저 묻고 학생들이 따라하는 것은 남의 기분을 알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기르기 위해서다.

친구와 짝을 짓고 바닥에 몸을 엎드리는 것은 서로 의지하는 도와야 하는 인간사회의 기본개념을 몸을 깨치도록 하려는 취지다.

학생은 15명내외. 모두가 자의든 타의든 가정을 떠나 홀로서기 연습을 하는 청소년들이다.

이곳 교육은 서로 따뜻한 정을 공유하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선천적 환경탓에 가정의 정을 느껴보지 못한 탓이다.

▶ 지난달 지리산을 등반한 들꽃 학생들이 손을 펼치며 등반성공을 자축하고 있다.

정기영 선생님은 "마음의 상처를 먼저 치료하고 남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게 하는 교육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교육프로그램은 청소년들을 향한 맞춤식 수업으로 이뤄진다. 교사의 일방적 가르침이 주류인 일반학교와 다른점이다.

정 선생님은 "학생들이 원하는 교육이 가장 효과가 크고 이들의 자립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곳 수업은 교실보다 현장에서 주로 진행된다. 청소년들이 사회를 보다 빨리 이해하고 자립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올 말 완공될 새로운 들꽃 학교 공사가 한창이다.

이달 중순에도 지리산을 등반하며 심신을 다듬고 호연지기를 키우고 돌아왔다. 피아노 교육은 부근 피아노 학원으로 가 선생님들에게 한수 지도를 받고 요가수업은 안산시 청소년수련관 도움을 받는다. 현장이 항상 교실보다 실감을 더하기 때문에 교육효과는 만점이다.

때로는 치아건강을 교육을 위해 치과선생님을 찾기도 하고 약물중독 예방을 위해 부근 약국 약사선생님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영어회화 역시 외국인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다. 대부분 자원봉사를 자처한 안산시민들이다. 학교 재정은 주로 후원에 의지한다. 지금까지 학교를 물심양면으로 도운 이는 300여명. 그중에는 TV연기자도 있고 회사 사장님고 있고 일반 대학생도 있다.

들꽃피는 마을의 태동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노동교회를 개척하던 김현수 목사는 아침마다 교회에서 불법(?)숙박을 한 가출청소년들과 맞닥뜨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마다 이날 일이 반복되자 김 목사는 이들을 모른채 할 수 없었다. 그는 아예 이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여기고 집으로 불러들였다. 평생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자세로 살기로 마음도 정했다. 대신 목회생활은 접었다.

2년후인 1996년 안산 선부동에 들꽃피는 마을.학교를 설립하고 가정이 없는 청소년들 교육을 시작했다. 1999년부터는 불우청소년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운동을 펼쳤다. 쉽지는 않았짐나 교회를 중심으로 많은 가정이 이에 동조했고 현재는 10개 가정에서 60여명의 불우청소년들이 새로운 둥지를 찾을 수 있었다. 이중 들꽃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15명을 제외난 나머지 청소년들은 일반학교를 다니고 있다.

김목사는 "사랑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가정을 잃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바른길을 가도록 하는 것이 곧 목회활동이고 사회활동이며 우리사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교훈은 "꿈은 마음껏 삶은 힘껏"이다. 좌절하지 말고 힘차게 살자는 뜻이다. 올해의 교육목표는 "행복한 청소년세상 만들어가기"

로 정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당찬 생각, 당찬 마음, 당찬 인생'교육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모두가 자신있게 극복해 나가자는 취지다.

이 프로그램은 모두 5가지로 나뉘는데 머리개발을 위해 수학과 사회 법.경제.역사, 그리고 자신에 맞는 직업교육을 한다. 또 따뜻한 가슴 함양을 위해 나를 알기 프로그램이 있고 열린자세를 견지하기 위한 자치활동, 갈등해결프로그램, 인간관계개발프로그램을 실행중이다. 맑은 정신 함양을 목적으로 성격개발이나 영성훈련 프로그램이 있고 튼튼한 몸 만들기에는 요가와 기초건강관리프로그램을 만들어 학생들이 참여토록 한다.

7살때 형과 함께 가정을 떠난 문영환군(17)은 "무엇보다 따뜻한 친구들이 있고 가정이 있어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델이 꿈인 문군의 바램은 딱 하나. 사회가 가정을 잃은 청소년들에게 불우이웃이니 소외청소년이니 비행소년이 하는 말들을 쓰지 말았으며 한다는 것.

"가정이 없다는 이유로 무조건 자립능력이 없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아닌데 지금 사회는 가출청소년은 무조건 문제가 있고 범죄에 관여하고 다르게 대해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느 것 같아요. 그게 저희들은 부담이 됩니다. 그냥 가정 형편이 좀 어려운 정상적인 청소년으로 봐줬으면 합니다."

가정문제로 집을 나오게 된 민시아양(16) 은 미용사가 꿈이다. 그는 "선생님들이 인간적으로 대해주고 자상하게 가르쳐 줘 너무 좋다"며 "우리나라 최고의 미용사가 돼 이들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들꽃학교에도 고민은 있다. 바로 학생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검정고시 공부를 해야하기 때문.

정기영 선생님은 "사회적응을 위해 인성교육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자립을 위한 상급학교 진학을 원하는 학생도 적지 않아 별도의 검정고시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학교가 추구하는 바른사람교육과 주입식 제도권 교육이 상충돼 이에따른 혼란을 없애기 위해 교사들이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러나 "학생들이 선생님들을 믿고 따르며 열심히 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고민은 이곳에 들어오려는 청소년들은 많지만 이들을 받아줄 가정이 없어 안타깝다. 김 목사는 "매주 한두명씩은 전화를 걸어오지만 이들을 맡을 가정이나 학교시설이 부족해 걱정"이라며 보다 많은 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다행히 그동안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부근에 터를 마련해 학교 신축공사를 하고 있다. 올 10월쯤 완공되면 지금보다 45명 정도가 많은 60여명의 학생은 수용이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수천 수만에 이른 가정떠난 청소년들을 다 돌볼수 없어 가슴이 아프다.

들꽃피는 마을 홈페이지 (http://www.wahaha.or.kr), 연락처 031-486-8836

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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