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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정당운영과 국가경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새 정부의 출발이 왠지 불안하다.

출범 첫날부터 총리인준 문제로 여야 갈등은 극한대립으로 치달았고 일부 장관들의 재산관련 비리 의혹이 일더니 난데없이 북풍 (北風) 이 들이닥쳐 국민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북풍수사과정에서 발생한 권영해 (權寧海) 전 안기부장의 할복사건은 검찰의 기강 문제도 제기했다.

국정이 꼬이는 이유를 새 정부의 국가경영 미숙 때문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문민정치가 시작된 지 이제 겨우 6년째로 접어들었다.

안정된 구미사회가 말해주듯 민주주의는 시간을 먹고 자라는 가장 어려운 형태의 정부다.

새 대통령은 허니문 기간도 즐긴다고 하지만 불행히도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이런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다.

하기야 미국 대통령들도 상황에 따라서는 허니문 기간을 갖지 못했다.

지미 카터와 로널드 레이건이 그랬다.

나라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이 시점에서 金대통령은 무엇보다도 과거 보스 중심의 정당운영 방식이 국가경영에 적용될 가능성을 몇가지 이유에서 경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사문제에서 그렇다.

첫째, 국가란 일개 정당과 다르다.

국가경영의 목적은 온 국민의 복리증진이다.

소위 '3金청산' 주장은 마땅히 공당 (公黨) 이어야 할 정당들이 보스 중심의 사당 (私黨).붕당 (朋黨) 처럼 관리되던 낡은 관행이 청산돼야 한다는 논리를 담고 있었다. YS의 국가경영은 특정 정파와 김현철 (金賢哲) 씨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드러났듯이 구태 (舊態) 적 정당운영 방식을 국정에 그대로 옮겨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대통령선거후 신정부 출범까지 70일이라는 준비기간이 있었다.

적어도 일찍이 예상됐던 총리인준 문제, 주요공직자 인선원칙, 그리고 새정부 출범에 따른 대변화기에 공직사회의 유기적 일체감과 기강확립 등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로 면밀히 대비했어야 했다.

총리인준 파동, 일부 신임장관들의 재산관련 비리 의혹, 북풍처리과정에서 드러난 허점 등은 중대사들을 예견.대비하는 데 문제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특히 북풍문제는 언론을 통해 갑자기 불거진 것 같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쟁점화돼 있었다.

문제는 새 정부가 이런 중대사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일개 정당관리적 국가경영 증후군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 모두에게 봉사해야 할 국가경영은 위헌 (違憲) 시비, 재산이나 병역문제 등으로 물의를 빚을 소지가 있는 사람들의 요직기용, 행정체제의 불협화음이나 기강해이 등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이런 문제들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지혜의 동원을 최대화하는 수밖에 없다.

둘째, 소위 MKJ가 새로운 파워 엘리트집단으로 등장했다는 사실도 좋은 신호가 아니다.

미국에서도 정권이 바뀔 때면 5천명 이상의 고위관료가 자리바꿈을 한다고 하지만 원천적으로 인재집단이 두텁고 안정된 정치사회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그들과 우리의 형편은 판이하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 는 덩샤오핑 (鄧小平) 의 명언이 인재등용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대표성이 강한 정당과 유사한 국가경영집단보다는 범국가적으로 인재를 등용해 매끄러운 국정운영을 해야 할 것이다.

푸대접 받아 온 지역의 낙후가 그 지역 출신들을 요직에 기용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한 정책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실제적이다.

셋째, 정당은 복수로 존재하며 망할 수도 있지만 단일체인 국가가 잘못되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국정에는 실험이 있을 수 없다.

권력의 속성상 보상이 불가피한 경우라면 주요정책 결정직 이외의 자리에 기용하고, 객관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인사들도 제2선에 배치해 일정 '수습기간' 을 거치게 하는 게 좋다.

정상상태와 파국 사이에는 위기라는 완충단계가 있다.

YS는 '다행히도' 위기단계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위기에서 시작한 金대통령은 무조건 수습해내야 할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인재 총동원체제의 발동이 이 수습작업을 도울 것이다.

안영섭〈명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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