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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시집낸 신경림 시인 출판기념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신경림 (申庚林.63) 시인이 시집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창작과비평사刊) 을 최근 펴내고 지난 20일 밤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서울 견지동 조계사 뒤 한 주점에서 아무런 격식 없이 열린 이 출판기념회에는 申시인의 고향 친구이자 문우인 문학평론가 유종호씨를 비롯해 후배문인인 소설가 이문구.시인 이시영씨등 10여명이 모였다.

"사회주의의 몰락을 현장에 가서 목격하기도 하고 우리 자신이 거덜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를 겪기도 했다.

이런 격랑 속에서 도대체 시는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고 회의를 느끼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시를 통해 남과 대화를 하지 않고는 더욱 견딜 수 없다."

5년만에 시집 한 권 더 보탠 심경을 申씨는 어느 때보다 착잡하게 털어놓았다.

그런 申씨에 대해 유종호씨는 "그래도 자네 같은 옹골찬 시인이 있어 언 마음들을 녹여주고 있지않나" 고 위로했다.

그러면서 고향 충주에서 겪은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군수 아들이 인민군에 끌려갔다 국군의 북상으로 패잔병이 됐다.

아버지가 군수이니 우리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동료들에게 투항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네나 돌아가 어떻게든지 실아보라며 손을 흔들며 전송해주었다.

그들이 뒤에서 총을 쏠까봐 식은 땀을 흘리며 뒤를 돌아보니 그들은 산마루에서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고 한다.

그 생사의 나락에서 동료의 행복을 위해 흔들어주던 그 손들이 바로 시심 (詩心) 이고 '농무' '남한강' '쓰러진 자의 꿈' 등 申씨의 시집들에도 인간과 사회를 위하고 보듬으려는 지극한 정성의 그 손들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이제 우리 문단도 좀 더 우리의 근본을 둘러봐야할 것이며 이웃에 대한 따스한 관심만이 여전히 살만한 사회이게끔 하리라며 다시 붓끝을 추스를 것을 다짐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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