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내각 총해산…옐친, 총리대행에 키리옌코 에너지장관 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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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23일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를 포함한 전 내각을 해산하고 세르게이 키리옌코 에너지장관을 제1부총리로 임명, 총리직을 잠정 대행토록 했다고 크렘린궁이 발표했다.

키리옌코 총리대행은 이날 이타르 - 타스 통신과의 회견에서 옐친 대통령이 자신에게 새 총리를 포함한 차기 내각의 조각임무를 부여했다고 밝혔다.

한편 내각해산 소식이 알려진 직후 모스크바 증시에선 주가가 6% 폭락했다.

이같은 전격 내각 해산은 91년 러시아연방이 출발한 뒤 처음 있는 일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선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이 수용할 만한 유일한 정치인으로 5년이나 부동의 총리자리를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그의 해임 자체가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구나 경제담당인 아나톨리 추바이스. 보리스 넴초프 제1부총리 2명의 해임은 그들이 러시아 개혁의 방패로 간주돼 오던 터여서 서방국가 모두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옐친 대통령은 "총리가 2000년 대선에 전념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물러나게 했다" 고 설명하고 있다.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지난 대선 때뿐 아니라 대선 후에도 2000년 대선 후보로 줄곧 거론돼 왔기 때문에 옐친 대통령의 이러한 설명은 '시기적' 으로는 몰라도 그 자체가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옐친 대통령의 설명은 불충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무엇보다 체르노미르딘 총리가 러시아대통령의 필수조건으로 여겨지는 개혁성향이 약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다 넴초프 부총리 등도 여전히 대선 주자로 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옐친 대통령의 건강이상으로 국정장악에 대한 의구심이 끊이지 않는 상태에서 차기 대권주자가 나타난다면 개혁진영의 분열 가능성이 크고 레임덕 현상마저 나타날 위험성이 있다.

결국 96년 대선 이후 지금까지 개혁진영에서 차기 대선 후보를 정하는 정치적 조율과정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옐친의 배경설명에 관계없이 '모종의 정치적 거래' 에 대한 의혹이 끊임없이 야기될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내각 총해산이 그동안 러시아 정치권 및 사회문제로 떠오른 체임 (滯賃) 과 관련돼 있다고 보는 일부 현지 관측통들의 시각도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 의 관리를 받는 러시아는 재정긴축으로 임금뿐 아니라 연금마저 제때 지급하지 못해 국민들의 큰 불만을 사왔다.

이 문제는 96년 대선에서 옐친 대통령이 '즉각 해결' 을 공약으로 내세운 중요한 과제였고 재선 뒤 "이 문제를 해결못한 장관은 각오하라" 는 으름장까지 수시로 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해결의 가닥이 잡히지 않은 이 사태에 대한 총책임을 총리와 그의 내각에 묻게 됐다는 것이다.

아무튼 96년 대선 이후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조용했던 러시아 정치권은 대선정국으로 방향을 급선회하게 될 것 같다.

그러나 내각 총사퇴와 관계없이 러시아의 개혁방향이 바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신임 총리서리가 개혁의 선두주자인 넴초프 부총리의 친구로 개혁진영의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추바이스 및 넴초프 부총리의 역할도 계속 새 내각에 등장하리라는 관측이 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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