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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옥수 신창원을 보는 눈…누가 그를 영웅이라 하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감옥을 탈출한 주인공. 살벌한 경찰의 추적을 교묘히 따돌리며 도피행각을 벌인다.

이런저런 눈물겨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그는 주위의 동정을 산다.

영화 이야기라고?

그게 아니다.

탈옥수 신창원의 경우를 보자 지난해 1월 부산교도소를 빠져나간 이래 그는 은근한 '인기' 를 얻고 있다.

경찰의 검거 실패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참 대단한 놈이야" 라며 찬사 아닌 찬사를 보낸다.

브라운관에 비치는 애인의 눈물어린 호소와 사회복지시설에 성금을 보냈다는 소식에 '동정표' 가 몰린다.

그뿐인가.

1백미터를 12초에 주파하는 '돌파력' ,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 "정치인과 고리대금업자를 상대로 강도짓을 해 불쌍한 사람을 돕겠다" 는 내용을 담은 일기장…. 일종의 신화를 낳을 정도다.

한마디로 그는 '스타' 다.

훌륭한 외모나 출중한 능력이 아니라 악행 (惡行) 을 통해 인기를 모으는 '네거티브 (부정적) 스타' 다.

'안티 히어로 (반영웅)' 라고도 불리는데 이들은 영화의 '단골손님' 이다.

반영웅의 신화를 그린 대표적인 영화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살인과 강도짓으로 30년대 미국을 시끄럽게 했던 악당 부부 클라이드 배로우와 보니 파커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은행강도와 살인을 밥먹듯 하며 남미까지 원정을 갔던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를 다룬 '내일을 향해 쏴라' 도 같은 유형. 한국영화 '세상밖으로' 에도 비슷한 분위기의 반영웅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왜 이들을 노골적으로 미워할 수 없는 것일까. 일단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낙오자라는 측면이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적 면모를 발휘한다는 점이 호소력 있어 보인다.

'영웅본색' 의 주윤발. 실상 총 두자루에 인생을 건 '동네건달' 주제에 의리 하나는 목숨처럼 여기지 않는가.

자연 관객들은 그들이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또 네거티브 스타를 옹호하는 성향의 밑바닥에는 현대인의 사회심리도 자리하고 있다.

갈수록 조직화하고 거대해지는 사회체제에 비해 위축되기만 하는 개인들에게 반영웅은 대리만족을 전달한다.

권력과 사회의 통념에 과감히 맞서는 이들의 일탈행위를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는 것은 소시민의 보편적 정서일 터다.

하지만 함정은 존재한다.

심각한 현실조차 영화나 TV드라마를 구경하는 방식으로 바라보는 현대인의 '눈' 에 관한 문제다.

현실보다는 허구에 매달리기 일쑤인 미디어의 시각에 기대 통찰력을 가꾸고 있다면 세상은 '아노미' 로 가는가, 아니면 '유토피아' 행인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신데렐라 신화나 성 (性)에 대한 황당한 환상도 '귀여운 여인' 과 3류 비디오가 던져주는 '영화적 눈' 이 만들어낸 것이다.

온갖 나쁜짓을 저지르면서도 사랑을 받는 네거티브 스타란 것도 결국 우리를 폭력에 무감각하도록 만든 영상매체가 창조한 게 뻔하다.

혹시 사람들은 신창원도 '도망자' 의 해리슨 포드나 '쇼생크 탈출' 의 팀 로빈스 쯤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범죄자라는 사실은 망각한 채….

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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