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천상병의 시와 막걸리 못 잊을 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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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솔직담백한 한국 사람들의 심성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주한 미국대사관의 '터줏대감' 에릭 존(45) 정무 참사관이 3년 간의 한국 근무를 마치고 떠난다. 5월 초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관 부대사로 부임한다. 비록 직급은 한 단계 높아졌지만 정든 한국을 떠나게 돼 "섭섭하다"고 그는 말한다.

워싱턴의 명문 조지타운대 출신인 존이 한국에 첫발을 디딘 것은 1984년. 부산 주재 미국영사관에서 2년간 일한 그는 이후 93~96년 미국 대사관에 근무했고 다시 2003년 참사관으로 한국에 왔다. 세 차례 걸쳐 9년 동안 한국에서 근무했다. 국무부 한국과 부과장 (98~99년), 북한 담당(96년) 등도 역임했다.

그는 굵은 바리톤 음성으로 "워싱턴에서보다 서울에서 근무한 기간이 더 길다"고 말했다. 한국인 부인 (윤 존)과 결혼한 그는 순두부.도토리묵.비지찌개 등 한국 토속 음식을 즐겨 먹는다. 그는 "나는 소주파가 아니라 막걸리파"라며 웃었다. 그는 또 고(故)천상병 시인의 시를 즐겨 읊조린다. 그는 "그의 시는 인간과, 저 어디인가의 초월적인 존재를 연결시켜주는 서정시"라고 설명했다. 정서적으로 반쯤은 한국인이 된 셈이다.

존은 한.미 관계에 대해서는 "건강하다"고 낙관론을 폈다. 70~80년대와 달리 양국 관계가 정치.경제 .문화라는 세 개의 기둥으로 단단히 결속돼 있어 웬만한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에서) 진짜 반미주의자는 극소수"라며" 문제는 TV 카메라가 항상 극소수 데모대의 성조기를 찢는 장면을 부각시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의 후임으로는 한국계 미국인 조셉 윤 참사관이 부임할 예정이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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