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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 국립예술아카데미 첫 외국인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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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한국과 카자흐스탄 문화교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낯설게만 느껴지는 중앙아시아 국가 카자흐스탄의 문화를 한국에 소개하고 현지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문화 전도사’가 있다. 카자흐스탄 국립예술아카데미 성악과 안창현(49·사진·테너) 교수가 주인공이다. 현지 태생이 아닌 한국인으로서 현지 음악대학의 교수가 된 것은 이례적이다.

안 교수는 중앙일보 주최, 중앙SUNDAY 주관으로 15~20일 열린 ‘비단의 향연: 한·중앙아 문화교류축제’에 카자흐스탄 공연단을 이끌고 왔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 3개국의 다양한 음악과 춤을 선보인 이번 공연이 성공한 데는 안 교수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그는 15년에 가까운 현지 생활에서 쌓은 인맥을 활용해 예술인 섭외에 큰 도움을 줬다. 공연 기간 중 능통한 러시아어로 3개국 예술단이 서로 호흡을 맞춰 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띄웠다. 옛 소련에 속했던 중앙아시아 국가 사람들은 지금도 대다수가 러시아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공연 마지막 날엔 직접 무대에 올라 카자흐의 유명 작곡가 라티프 하미지가 쓴 오페라 ‘아바이’의 우수 어린 아리아를 멋들어지게 불러 관객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19세기 카자흐 민족시인 아바이의 굴곡 많은 삶을 소재로 한 이 서정적 노래는 카자흐인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 아니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는 까다로운 곡으로 통한다. 안 교수는 “어른을 공경하고 친구와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며 정에 끌리는 카자흐 사람들의 정서가 우리와 너무도 닮았다”며 “카자흐가 고향처럼 편안히 느껴진다”고 했다. 그가 카자흐 음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이유다.

중학·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칠 정도로 어려운 청소년 시절을 보낸 안 교수가 카자흐스탄에 가게 된 건 우연이었다. 태권도 사범이자 목사로 현지와 인연을 맺고 있던 손위 동서가 그의 음악적 재능과 열정이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카자흐 유학을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1994년 서른네 살의 나이에 ‘늦깎이 유학’을 떠났다. 카자흐 국립음악원에서 7년간 공부해 합창 지휘와 성악 전문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지난해 카자흐 국립예술아카데미의 교수가 됐다. 이 학교 53년 역사에 최초의 외국인 교수였다.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안교수는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카자흐 국영방송의 ‘고려사람’이란 프로에서 한국말 아나운서로 일하는 한편, 국립사범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지난달 말에는 카자흐 옛 수도 알마티에서 한국 공연단을 초청해 개최한 한국문화주간의 총책임을 맡았다. 그는 “20살 난 딸도 내가 일하는 학교의 뮤지컬드라마과 1학년에 재학 중”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카자흐에 살며 양국 문화교류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유철종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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