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신, 28년간 받아온 전화설비비 왜 안돌려 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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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鄭모 (34.서울 서초구 반포동) 씨는 최근 PC통신용으로 전화를 한 대 더 설치하면서 전화설비비 24만2천원을 내고는 뭔가 개운찮았다.

한국통신 직원은 "28년전부터 신규가입자는 모두 내고 있다" 면서 "전화를 해지할 때 돌려받는다" 고 말했지만 납득이 안갔다.

전화를 구경하기 힘든 70년대에 전화적체 해소를 위한 투자재원 조달을 위해 받기 시작한 설비비지만 전화가입자가 2천만을 넘어선 지금에 와서도 기존가입자에 대한 환불은 커녕 설비비를 계속 징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대해 한국통신과 대주주인 정부는 가입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돈이 없다는 이유로 뒷짐만 지고 있다.

◇ 설비비 얼마나 내나 = 정부는 70년 8월 공중전기통신사업법상에 통신인프라구축을 위한 재원마련차원에서 전화설비비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따라 신규가입자들은 지역별로 12만2천원~24만2천원씩 설비비를 내고 있다.

한국통신이 그동안 받은 설비비는 총 4조3천7백87억원. 설비비는 전화를 해지할 때 돌려받지만 한 번 전화를 설치하면 해지하는 경우는 드물어 한국통신은 국민들로부터 돈을 빌려 이자 한 푼 안내고 써온 셈이다.

특히 한국통신이 81년 체신부 (현 정보통신부)에서 독립, 정부투자기관이 되면서 법적으로 설비비제도가 삭제됐는데도 한국통신은 전화이용약관에 이 조항을 집어넣고 설비비를 계속 받고있다.

미국과 유럽등에서는 설비비제도가 없고 대신 전화가입자들은 10만원 안팎의 가입비만 낸다.

◇ 설비비 왜 못돌려주나 = 설비비를 투자재원으로 쓴데다 정부가 각종 기금등으로 가져가 설비비 자력상환은 불가능하다는게 한국통신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99년부터 시내전화서비스를 시작할 하나로통신이 9만원의 가입비만 받을 방침이라 현행 설비비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한국통신 가입자의 대량 이탈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최근 설비비를 받을 명분이 없다며 반환을 촉구했다.

◇ 해결책 = 한국통신은 설비비의 절반을 주식으로 상환할 수 있도록 정부보유주식 (지분율 71.8%) 을 무상양여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지만 정부의 반응은 냉담하다.

정보통신부는 "민영화절차를 밟고있는 준 (準) 민간기업의 부채를 정부가 떠안을 수 없다" 는 입장이고 재정경제부도 같은 자세다.

한국통신은 이에따라 가입비 (10만원선) 를 신설하고 기본료를 올리는 (현 2천5백원→5천원) 새 제도를 도입,점진적으로 기존가입자를 새 가입자로 전환시키면서 설비비를 상환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가입자가 한꺼번에 새 제도로 전환할 경우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게 문제다.

또 다른 방안은 한국통신이 정부주식을 장기무이자 분할상환 조건으로 인수,가입자들에게 주식으로 반환하는 것이나 이에대해서도 정부는 시큰둥하다.

심지어 시내통화요금인상도 한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으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결국 해결책은 정부의 결단밖에는 없는 셈이다.

이동전화사업자인 SK텔레콤도 당초 가입자당 65만원씩 설비비를 받았지만 96년 총 8천억원을 가입자들에게 돌려줬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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