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테러방지법 제정 서둘러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해외 체류 한국인들의 안전에 빨간불이 켜졌다. 우리 국민에 대한 피격.납치.참수 등 테러가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슬람무장총본부'라는 테러단체가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국적선에 대해 선박테러를 경고하기도 했다. 또 인천국제공항에 미국행 항공기를 폭파하겠다는 협박 편지가 도착하는 등 우리나라도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님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효적인 테러대응 시스템의 구축 및 가동 여부가 중대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김선일 사건에서 우왕좌왕하고 뒷북치는 정부의 테러 대응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1982년 1월 '국가 대테러 활동지침'이 대통령 훈령 제47호로 제정돼 있지만, 이는 대외비의 하위 법규에 불과하다. 국민의 생명 및 안전 보호와 직결된 반테러 행정이 법률에 근거해 실시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테러방지법 제정은 국민안보의 중요성이나 법치주의의 요청에 비추어 시급한 일이다. 유엔 안보리의 요청(결의 제1368호 등) 및 반테러 국제연대 움직임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들의 반발로 입법이 지연되고 있음은 아쉬운 점이다.

현재 테러 관련 법률이 70여개, 유관 부처가 20개에 달한다. 반테러 업무가 분산돼 있어 사건 발생시 일사불란한 대응이 어렵다. 업무협조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법적으로 강제할 길이 없으며 책임질 부서도 없는 게 현실이다.

김선일 사건에서 외교부 실무자가 AP통신 기자의 문의를 소홀히 한 것은 정부 내에 각종 테러첩보에 대한 컨트롤 타워 기능을 하는 부서가 지정돼 있지 않은 것과 무관치 않다. 테러첩보를 즉각 중앙기구에 통보했더라면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 테러범죄 신고 의무화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테러방지법의 핵심은 국가 차원의 대테러 대응 시스템을 정비하고 이를 법제화하는 데 있다. 구체적으로 총리를 의장으로 하는 국가대테러대책회의로 하여금 테러대책 수립 및 시행평가를 비롯한 중요사항을 심의.의결하게 하고, 국정원에 대테러센터를 설치해 대테러 활동의 기획.조정과 같은 관제 기능을 책임지고 수행토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그간 국정원이 수행해 왔던 반테러 활동을 법률로 제도화.양성화하는 데 불과하며, 국정원의 권한 강화가 아니다. 사법경찰권 조항도 삭제돼 인권침해의 소지는 없어졌다. 따라서 권한을 인정하고 책임을 따지는 구조로 하루 빨리 전환해야 한다.

테러예방 및 억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제협력이 긴요하다. 국내법 정비를 통한 부처 간 정보공유 및 주요 기간시설에 대한 경비 강화 외에도 유관국가 간의 정보협력 및 국제수사공조체제를 확충하는 것이 절실하다.

국정원은 미 CIA, 독일 연방정보부(BND) 등과 상시적인 테러정보 교환시스템을 구축.강화해야 한다. 테러범의 신속한 인도 및 엄중한 처벌을 위한 양자 및 다자간 제도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속지주의 원칙(범죄발생지국의 1차적 관할권 행사)의 제한을 모색해야 한다. 국제공조 하에 테러혐의 외국인의 출입국 동향 감시활동도 확대해야 한다.

당면하게는 자이툰부대 군수물자 수송 선박은 물론 중동을 오가는 국내 6개 해운회사 49척의 선박에 대한 안전대책 마련이 시급히 요구된다.

예컨대 구축함을 동원해 국적선을 근접 호송하는 한편 테러공격에는 즉각 진압작전을 전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연안국의 해양주권을 불법적으로 침해하거나 외국 선박의 안전통항을 부당하게 위축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연안국에 사전 통보하고 긴밀히 협조하는 가운데 군사적 대응은 필요한 범위 안에서 최소화하는 등 국제법 준수에 신경써야 한다.

테러는 우리 정부가 반테러 시스템을 정비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국민의 생명이 걸린 일에 부처이기주의나 국가경영을 무시한 반대를 위한 반대는 금물이다.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 대한국제법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