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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중앙亞를 촌 동네라 하는가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20일 저녁 서울 국립국장 달오름 극장은 후끈했다. 중앙SUNDAY 주관 ‘비단의 향연’에서 470여 명 관중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예술단의 공연에 열광했다.

우즈베크 남성 5인조 중창단 수르혼의 노래, 댄스그룹 오파린의 원색의 춤, ‘우즈베크의 성시경’ 라임혼의 발라드풍 목소리는 관객을 흔들고 어루만졌다. ‘카자흐의 원더걸스’ 두다라이의 아카펠라 공연엔 탄성이 터졌고, 투르크메니스탄 예술단의 ‘약간 촌스러운’ 춤에도 아낌없는 박수가 나왔다. 15일 시작된 ‘향연’의 7회 공연은 갈수록 열기가 더해져 표는 진작 매진됐고, 입석도 수십 명씩 됐다.

공연 마지막 날 한국 거주 우즈베크 아가씨들은 무대 앞 즉석 춤으로 공연장을 내내 달궜다. 두다라이가 한국 동요 ‘섬집 아기’를 부를 때 관객은 숨을 죽였고, 말미의 ‘아리랑’ 합창은 무대와 객석을 하나로 만들었다.

중앙아시아에 대한 열기는 뜻밖이다. 1992년 독립했지만 가난했던 이들 나라는 3D업종 취업 노동자와 한국으로 시집온 여성을 통해 비틀린 형태로 알려졌었다. 솔직히 많은 한국 사람은 중앙아를 ‘석유 좀 나는 후진국’ ‘말 타고 양고기 먹는 나라’로 여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현실은 다르다. 이들은 미래를 위한 의욕에 차 있고, 여차하면 풍부한 석유를 무기로 쓸 준비가 돼 있다. 세계 경제위기에도 플러스 성장을 구가하는, 절대로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빅마마’처럼, 세련된 아카펠라 창법을 구사하는 두다라이를 보라. 그들이 ‘말 타는 촌 동네’ 아가씨들인가. 유럽을 지향하고, 2010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의장국이 될 카자흐에 한국은 그리 큰 나라가 아니다. 자존심의 핵심은 석유다. 여기 새길 만한 얘기가 있다. 카자흐 전략연구소 불라트 술타노프 소장의 말이다. 그는 “한국에 석유를 주면 우린 뭘 얻느냐”고 묻는다. “돈은 미국ㆍ중국ㆍ일본과 메이저가 준다”고 한다. ‘한국 돈은 푼돈’이란 식이다. 얼마 전까지 카자흐로는 달러가 펑펑 몰렸다. 경제위기로 주춤해져 최근 중앙아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우나 외교 제안을 할 만큼 나긋해진 것이다. 카자흐의 목표는 한국의 기술과 투자다. 석유와 가스가 꽤 나는 우즈베크도 한·미 동맹을 연상시킬 만큼 한국의 많은 협력을 기대한다.

이처럼 우호적 환경이지만 상당수 한국 대기업은 싸늘하다. 석유는 딴 데서 사면 되고, 기술 이전도 시큰둥하며 리스크가 커 투자도 못한다는 식이다. 청와대가 중앙아를 ‘국제사회의 한국 그룹’으로 만들려 해도 정부의 집중도는 낮다. 국민들은 현지 문화엔 시큰둥하다.

구애를 외면하는 한국의 일방적 태도는 반발을 일으킨다. ‘석유 타령만 말라. 우리에게 뭔가를 달라’는 현지 목소리가 커간다. 민·관 합동 ‘비단의 향연’은 바로 이런 소통을 위한 문화적 계기를 마련하는 행사였다.

한국과 중앙아의 관계가 진정해지려면 ‘공정한 쌍방향 관심’이 지속돼야 한다. 문화는 그 출발점이다. 대장금·해신 같은 드라마가 일으키는 한류에만 머물면 안 된다. ‘향연’ 같은 행사가 1회성으로 그치지 않게 민ㆍ관이 계속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안성규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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