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사면초가의 IMF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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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미국 대학가에서는 아시아 환율위기에 대한 토론회가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토론회에서 놀라운 점은 태국.인도네시아.한국 등 위기에 처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국제통화기금 (IMF) 당국의 경제처방내용을 지지하는 경제학자를 발견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이다.

하버드대의 제프리 삭스.마틴 펠스타인 교수, 스탠퍼드대의 헨리 로완.래리 라우.론 매키논 교수 등은 각종 기고문을 통해 IMF 경제처방의 문제점을 논리 정연하게 제시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이들의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과거 위기에 처한 남미제국과는 달리 한국은 정부재정.물가 등 거시경제상황이 비교적 건실했는데도 불구하고 강도 높은 통화 및 재정정책의 추진을 종용함으로써 과다한 경기위축과 기업도산을 유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 어려움을 초래해 필요한 구조개혁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둘째, IMF가 종용하는 각종 구조개혁 조치의 내용과 추진방법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제결제은행 (BIS) 조건 준수, 부실금융기관 폐쇄 등의 조치는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 등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추진돼야 하며 그 동안의 경제관행을 모두 바꿔야만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셋째, 부실대출을 해준 외국 금융기관들에는 아무런 손해가 돌아가지 않는 해결방식은 도덕적 해이란 문제를 야기하며 구조조정 추진과정에서 미국.일본 등 강대국들의 자국이익을 관철하려는 의도는 해당국의 국민감정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있다.

세계적 석학들의 이와 같은 주장은 전 국무장관 조지 슐츠 같은 인사로부터 IMF 폐쇄론마저 제기하게 하고 있어 특히 미국 의회로부터 자본금 증액 승인을 받아야 하는 IMF당국을 매우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IMF자본금 증자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지지를 보냄으로써 향후 IMF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협조해야 할 것이다.

비록 IMF가 종용하는 정책내용에 문제가 있더라도 우리의 잘못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을 돕고 있는 IMF의 노력과 역할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정책들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우리정부와 IMF간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해도 잘못된 정책은 시정되는 것이 한국경제는 물론이고 학계로부터 비난받고 있는 IMF를 위해서도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을 고정관념을 갖고 접근하는 것은 금물이다.

특히 우리가 처한 현재상황은 IMF당국도 예견하지 못한 것으로서 경제전문가들은 좀더 겸허한 자세로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정부가 IMF와 협의해 환율시장을 조속히 안정시키는 구체적 방안을 마련할 것을 건의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환율이 안정되지 않으면 금리가 안정될 수 없으며 금리와 환율의 안정 없이 기업활동의 정상화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IMF 입장대로 이를 순수 시장기능에만 맡길 경우 시간이 너무 걸려 인플레 - 고금리의 악순환이 우리 경제에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각국의 지원자금과 한은 외환보유고의 일부로 환율안정기금을 조성해 환율의 단기적 변동폭을 줄인다면 이미 안정세에 접어든 환율이 좀더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균형을 찾게 돼 경제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에 필요한 새로운 자금은 일본.중국 등 원화안정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아시아의 무역흑자국으로부터 조달될 수 있을 것이다.

2차대전 후 IMF 설립의 기본목적이 환율 안정에 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구상은 IMF의 본래기능과도 부합하기 때문에 매우 바람직한 보완책이 될 것이다.

서상목〈국회의원·美스탠퍼드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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