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 미스테리]청와대 반응…"어떻게 이런일이…" 분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청와대측은 진상은 철저히 규명하되 정치권에 대한 처리방향은 조사결과를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는 조심스런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국민회의 정대철부총재가 전달한 문제의 안기부 내부문건을 검토한 결과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결론이 나자 "이렇게 까지 할 수 있느냐" 며 분노했다는 후문이다.

때문에 청와대측은 "북풍공작을 지휘한 총책임자가 누구인지를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고 벼르고 있다.

엄격히 말해 내부 보고서에 거명된 정치권 인사들이나 안기부 고위 관계자들은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그같은 어마어마한 '모의' 를 특정 정치인들이 독자적으로 실행에 옮긴다는 것은 권력의 특성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의혹이다.

따라서 "과연 누가 각본을 작성했으며 그 각본을 실행에 옮기도록 재가한 최종 결재자가 누구냐" 를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청와대측은 북풍수사를 확대하는 데는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는 기색이다.

모든 것을 까발릴 경우 필요악일 수 있는 남북 비선이 모두 드러나는 것은 물론 향후 남북문제를 처리하는 데 많은 문제가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수사가 정치권으로 확대되는데 따른 정치적 부담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요컨대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북풍공작의 실체가 명명백백히 드러나면 정치권이 걸려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면 야당측은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할 것이고 가까스로 풀리기 시작한 정국은 더욱 꼬일 수 있다" 는 우려다.

그래서 청와대측은 북풍수사가 진상규명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지, 정치보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김대중대통령의 언급을 상기시키고 있다.

심지어 이번 사건에 관한한 청와대측은 앞으로 어떠한 입장표명도 하지 않는다는 내부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한마디로 청와대가 개입하는 인상을 줄 경우 아무런 도움도 안되면서 불필요하게 떠맡게 되는 부담은 상당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계산이다.

따라서 우선은 안기부와 검찰의 조사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지켜보면서 여론의 추이와 야당의 움직임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한 뒤 결정하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문일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