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400원대 안정땐 금리·물가 '4월 춘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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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환율이 예상보다 빠르게 안정조짐을 나타내 국내 산업계를 옥죄고 있는 고금리 압박이 다소 진정되지 않을까 기대되고 있다.

환율안정은 올들어 급등하는 물가를 낮추는데도 큰 보탬이 된다.

원화환율은 올들어 달러당 1천5백~1천6백원대를 고공비행하며 좀처럼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나 이달 중순들어 외환수급 개선과 함께 뚜렷한 하락세로 접어들어 16일엔 마침내 올들어 처음 달러당 1천4백원대로 떨어졌다.

이날 3년만기 회사채 수익률 역시 연 19.5%의 보합세를 닷새만에 마감하고 19%에 수렴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제통화기금 (IMF) 은 금리를 섣불리 낮출 경우 자본시장을 통한 외화유입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기업구조 조정을 더디게 한다는 이유 등을 내세워 그동안 "환율안정 없이 금리하락 없다" 는 대전제를 굳게 지켜왔다.

따라서 정부나 통화당국은 모처럼의 환율안정을 장기화해 IMF와 금리인하 협상을 개시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한국은행은 시중은행에 외화자금 지원을 끊더라도 환율이 1천4백원대에서 장기간 머무를 경우 금리를 추가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에 상주하는 IMF직원으로부터 매일같이 시중자금 및 금리상황을 체크받아온 한은은 달러환율이 1천3백원대까지 떨어져 안정될 경우 시중금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 환매조건부채권 (RP) 금리를 현행 연24%에서 2~3%포인트 가량 인하할 계획을 갖고 있다.

한은 박철 자금부장은 "IMF와의 약속대로 환율이 하향 장기안정화되면 당연히 RP금리를 낮춰 콜금리 등 단기금리를 하향조정하는 작업에 들어갈 것" 이라고 말했다.

최근 환율안정 기조는 은행권의 단기외채 만기연장이 거의 1백% 성사된데다 가용외환보유고도 지난해 말 80여억달러 수준에서 지난 14일 현재 2백억달러를 넘어서는 등 (2백6억달러) 외환 수급구조가 급격히 안정된 때문으로 풀이된다.

상당수 외환딜러들은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주식시장을 이어받아 채권시장에서도 외국인 투자가 활기를 띠고 있어 당분간 환율이 현행 수준에서 안정될 가능성이 크다" 고 전망하고 있다.

반면 겹겹이 쌓인 불안요인들로 낙관만 하기 힘들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삼성금융연구소 김진영 선임연구원은 "환율이 급락했을 때 그만큼 차익을 노린 외국계 금융기관들의 '사자' 가 많이 몰린 전례를 감안하면 갑작스레 찾아온 1천4백원대 환율이 얼마나 버틸지는 장담할 수 없다" 고 말했다.

한미은행의 한 임원은 "은행권의 협조융자로 근근이 버티고 있는 많은 기업들의 부실화가 일시에 표출되면 외환.금융시장은 다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될 것" 이라고 우려했다.

금융연구원은 최근 환율안정세에 대해 "3월 위기설이 우려와는 달리 무난히 넘어가는데다 수출입업계의 외환수급이 안정돼 환율이 급격한 내림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외채상환 및 수입대금 결제를 위한 외환수요가 두터워 당분간 큰 폭의 하락은 기대하기 어렵다" 고 전망했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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