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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여기서 찾을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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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오인환씨가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유실물 보관소’를 직접 운영하며 구상한 작품. 모자·웃도리·카메라케이스 따위 미술관에 어울리지 않는 잡동사니들이 기념물처럼 미술관에 모셔졌다. 벽면에는 길에 떨어진 이들 물건을 주워온 이들과, 사소하지만 자기 물건을 찾으러 온 이들의 사진이 걸렸다. [오인환씨 제공]

2002년 제4회 광주비엔날레. 세계 각국 작가들이 작품을 뽐내고, 관객들이 이들 작품을 순례한다. 이처럼 정신없는 대규모 국제전에서 주최측은 마침 유실물 보관소 운영을 잊었다. 그래서 개념미술가 오인환(45)씨는 직접 보관소를 차렸다. 비엔날레 기간 내내 실제로 이 보관소를 운영하며 잃은 물건을 찾아줬다. 그때 찍어뒀던 사진과 챙겨뒀던 물건들은 7년만에 미술관으로 들어와 미술품이 됐다. 간이 선반에 가지런히 놓인 모자·카메라케이스·우산 따위 잡동사니다. 오씨가 7년만에 연 개인전 ‘TRAnS’에서다.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찾았나=당시 오씨가 운영하던 ‘유실물 보관소’에서는 주운 물건을 맡긴 ‘착한 이’들을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찍어 물건 옆에 뒀다. 그리고 잃은 물건을 찾으러 오는 ‘성실한 이’들 또한 물건을 들고 기념 촬영을 했다. 길에 떨어진 물건을 매개로 주운 이와 찾으러 온 이는 이렇게 관계를 맺었다.

이 작가는 물건에 집착한다. 2000년과 2008년 각각 진행한 ‘우정의 물건’ 프로젝트 역시 물건을 매개로 인간 관계를 다시본다. 작가는 절친한 친구의 집을 방문해 종일 이 집을 샅샅이 뒤져 자기 집에 있는 것과 똑같은 물건을 찾아낸다. 욕실 슬리퍼, 전기 주전자 등등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더없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같은 도시에서 소비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비슷한 물건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소비에 소비 이상의 의미부여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시도한 일”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이것이 미술? 관객은 안다=2년 전 오씨는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 전시장에 향을 피웠다. 도시에 산재하는 게이바의 이름을 전시장 바닥에 향가루로 적은 뒤 불을 붙여 전시 기간 내내 태워 없앴다. 동성애자인 그는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의 작업은 이처럼 미술시장에서 좀처럼 거래되기 어려워 보이는 실험정신 넘치는 프로젝트들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 미술계의 다양성 확보에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말한다.

‘유실물 보관소’는 전문적 미술행사인 광주 비엔날레에서 선보였으나, 이곳의 열혈 미술대중조차 오씨의 유실물 보관소가 미술작품이라는 사실을 쉽사리 납득하지 못했다. 당시 관심을 보인 한 노인과 작가가 나눈 대화는 이 관객 참여형 실험예술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자네는 작가인가?” “그렇습니다.” “그럼 여기는 뭐든 찾아주는 곳인가. 나도 잃어버린 게 있다. 바로 청춘이다.” 7월 19일까지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02-739-7067.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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