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많은 도시가 도시를 활성화시키고 관광 자원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 ‘문화지역(culture district)’을 조성해 왔다. 세계 정치의 중심인 워싱턴DC가 뮤지엄 콤플렉스를 조성해 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전환된 지 오래다. 국제 상업·금융도시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는 샤우마인카이 거리를 ‘뮤지엄 거리(river bank of museum)’로 만들어 볼거리를 마련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는 인구 15만 명을 수용할 신흥 도시로서 여의도 면적의 세 배에 달하는 사디야트섬(Saadiyat Island·행복의 섬)을 조성하면서 270억 달러를 들여 문화지구를 조성하기로 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용산은 서울 도심과 부도심의 주요 연결축에 위치한다. 남산공원과 한강시민공원, 동작동 국립묘지를 잇는 녹지 연결 축상에 놓여 있기도 하다. 한강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넓은 공공부지를 확보하고 있으며,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으로 접근하기에도 매우 유리한 위치다. 넓은 부지와 접근 가능성은 사람을 끌어들여야 하는 ‘문화지역’을 조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가령 도쿄는 도심의 초고층 개발 계획에 문화시설을 포함 시킨 ‘롯폰기 삼각 예술지대(art triangle Roppongi)’로 문화적이고 세련된 도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전쟁기념관을 비롯해 역사민속박물관·어린이박물관·자연사박물관·정보통신박물관·민족학박물관·국립극장 등 10개가량의 뮤지엄을 세워 용산을 대표적인 한국의 문화 중심지로 만들기를 제안한다. 건물을 다닥다닥 붙여놓는 게 아니라 10만 평당 한 개꼴로 띄엄띄엄 특색 있게 지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뮤지엄 건물을 뺀 나머지 공간은 당초 서울시가 계획하는 공원의 기능을 충분히 살려 활용할 수 있다.
용산뿐만 아니라 각 지자체에 반환되는 미군 기지들 역시 이런 식의 문화 클러스터(cluster·집적단지)로 조성할 수 있도록 정부의 문화정책이 수립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전쟁의 상징인 미군기지가 문화공간으로 완전히 변모한다면 세계적인 화제가 될 것이다. 올해는 한국의 첫 박물관인 ‘제실박물관’이 일반에 공개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이런 뜻 깊은 해에 용산 미군기지를 뮤지엄 콤플렉스로 조성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발표되길 기대해 본다.
서상우 건축가·국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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