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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용산 미군기지를 ‘뮤지엄 콤플렉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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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많은 이가 서울을 구제불능의 도시로 보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과 팽창으로 ‘역사 도시’의 정체성을 잃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이전을 앞둔 용산 미군기지의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서울시는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와 같은 대공원을 조성하려는 계획을 내비쳤다. 그러나 그렇게 넓은 부지를 대규모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것은 도심에 공간이 넉넉하던 시기에나 가능했던 구시대적 발상임을 지적하고 싶다. 그 부지가 공원화한다면 노숙자나 술꾼, 놀이꾼의 공간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클 것이란 건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겪어보아 알 것이다. 서울의 용산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중심으로 ‘뮤지엄 콤플렉스(museum complex)’를 조성하는 방안이 적극 검토되어야 할 중요한 이유다.

서구의 많은 도시가 도시를 활성화시키고 관광 자원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 ‘문화지역(culture district)’을 조성해 왔다. 세계 정치의 중심인 워싱턴DC가 뮤지엄 콤플렉스를 조성해 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전환된 지 오래다. 국제 상업·금융도시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는 샤우마인카이 거리를 ‘뮤지엄 거리(river bank of museum)’로 만들어 볼거리를 마련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는 인구 15만 명을 수용할 신흥 도시로서 여의도 면적의 세 배에 달하는 사디야트섬(Saadiyat Island·행복의 섬)을 조성하면서 270억 달러를 들여 문화지구를 조성하기로 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용산은 서울 도심과 부도심의 주요 연결축에 위치한다. 남산공원과 한강시민공원, 동작동 국립묘지를 잇는 녹지 연결 축상에 놓여 있기도 하다. 한강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넓은 공공부지를 확보하고 있으며,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으로 접근하기에도 매우 유리한 위치다. 넓은 부지와 접근 가능성은 사람을 끌어들여야 하는 ‘문화지역’을 조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가령 도쿄는 도심의 초고층 개발 계획에 문화시설을 포함 시킨 ‘롯폰기 삼각 예술지대(art triangle Roppongi)’로 문화적이고 세련된 도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전쟁기념관을 비롯해 역사민속박물관·어린이박물관·자연사박물관·정보통신박물관·민족학박물관·국립극장 등 10개가량의 뮤지엄을 세워 용산을 대표적인 한국의 문화 중심지로 만들기를 제안한다. 건물을 다닥다닥 붙여놓는 게 아니라 10만 평당 한 개꼴로 띄엄띄엄 특색 있게 지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뮤지엄 건물을 뺀 나머지 공간은 당초 서울시가 계획하는 공원의 기능을 충분히 살려 활용할 수 있다.

용산뿐만 아니라 각 지자체에 반환되는 미군 기지들 역시 이런 식의 문화 클러스터(cluster·집적단지)로 조성할 수 있도록 정부의 문화정책이 수립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전쟁의 상징인 미군기지가 문화공간으로 완전히 변모한다면 세계적인 화제가 될 것이다. 올해는 한국의 첫 박물관인 ‘제실박물관’이 일반에 공개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이런 뜻 깊은 해에 용산 미군기지를 뮤지엄 콤플렉스로 조성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발표되길 기대해 본다.

서상우 건축가·국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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