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6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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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판꾼들은 변씨를 경계할 건덕지도 없었기 때문에 수인사 한 번으로 스스럼없이 판에 끼어들 수 있었다.

그러나 푼전을 두고 겨루는 섰다판이긴 했지만, 일단 꾼으로 끼어들어 패를 조이기 시작하면, 초조와 긴장이 강도 높게 교차하는 몰입의 경지는 큰 판과 다를 것이 없었다.

날린 돈은 불과 팔구천원에 불과했지만, 패를 들고 씨름하는 동안에 많은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화들짝 놀라 시계를 보았을 때는 2시간이나 흘러가버린 뒤였다.

봉환이가 자신의 행방을 찾아나선 것도 모르고 좌판으로 갔을 때는 철규 혼자 떨고 서 있었다.

섰다판에 끼어들었다는 얘기는 하지 않고 늦은 것을 백배사죄했다.

30분이나 지난 뒤에야 나타난 봉환은 예상했던 대로 대뜸 삿대질이었다.

"형님 어디 갔다 왔십니껴? 형님 처신이 이래도 되는 깁니껴? 도대체 좌판을 필 때마다, 겨 먹은 개매치로 꼬랑지 (꽁무니) 를 감추고 내빼는 이유가 나변에 있습니껴?" "허, 이 사람 또 핏대를 곤두세우네? 내빼기는 내가 임자들을 두고 어디로 내빼? 내딴에는 시세를 알아본답시고 장터를 몇 바퀴나 돌아오느라 발바닥에 땀이 날 지경인데. " "과실전 뒤에 있는 섰다판에서 화투패 조이다가 뛰어왔다 카는 걸 몰라서 묻는 줄 알아요? 늙은 암말 엉덩이 둘러대듯이 형님도 늙바탕이라 둘러대는 데는 이골이 났십니더. " 철규에게 했던 변명이 생판 거짓말이었다는 것이 탄로나버리자, 제풀에 화증이 끓어오른 변씨는 나중에 조용할 때 따져보려고 접어두고 있던 한 마디가 불쑥 쏟아져 나왔다.

"어젯밤에, 늙은 암말하고 구들장이 무너지라 하고 질탕하게 놀아난 건 도대체 어느 놈인데, 애꿎은 날 보고 이골 났다고 덮어씌우나?

자네 나한테 억하심정 있나?" 그러자, 무안당한 봉환의 얼굴도 흥분한 변씨 못지 않게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다가 고개를 삐딱하게 꼬아박으면서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런 말을 장바닥에서 마구다지로 공개를 해야 되겠습니껴? 어젯밤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동업자들끼리라고 그런 일도 같이해야 뒤통수를 안 얻어맞겠습니껴? 동업은 우리끼리 하는 기고, 사생활은 또 따로 있는 거 아입니껴? 형님의 그런 말을 두고 월권행위라 카는 깁니더. 알겠십니껴. " "좋아. 사생활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내 행동이 자네 말대로 사생활 침해라고 하자. 그러나 사생활에도 윤리도덕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을 테지? 한선생도 알고 있지만, 자네는 엄연히 임자가 있는 몸이 아닌가.

임자 있는 몸이 객지로 나다니면서 잠자리 볼 적마다 계집을 끼고 잔다면, 자네 몸뚱이가 쇳덩어리라 한들 언제까지 지탱을 하겠는가? 또 자네가 계집을 탐하는 버릇이 그렇게 고약하다고 승희한테 가서 고자질하는 것보다는 자네 면전에서 따끔하게 얘기하는 것이 수염 달고 다니는 사람의 태도가 아닌가?" "임자 있는 몸이란 말은 때맞춰 잘 꺼냈습니더. 그라고 승희한테 가서 고자질한다는 말도 잘 꺼냈습니더. 그러나 형님도 알고 보면, 그게 전부 허무맹랑한 얘기라 카는 걸 알게 될 낍니더. 명색이 여자하고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살고 있다는 내가 아직도 승희하고 잠잔 일이 없다 카면, 형님이 믿겠습니껴? 못 믿겠으면, 승희 그년한테 가서 한번 물어보소. " "이 사람이 입장 곤란해지니까 해도 될 말 안될 말을 마구잡이로 끌어다 쓰는군. 자네같이 소문난 색골이가 승희가 앙탈한다 해서 가만 두고만 봤을 리가 있나?" "그렇게 궁금하고 못 믿겠으면, 승희한테가서 물어보라 안캅디껴. " "그런 억하심정이 있어서 어젯밤에도 외입질인가? 과천에서 뺨 맞고 영등포 와서 눈깔 부라린다더니 자네가 그짝 아닌가.

그것도 억지야. 내가 돌아가서 승희한테 그런 말을 물어보면, 그것이 바로 사생활 침해라는거야. 알기나 해?" 마주 버티고 서서 삿대질은 하고 있었지만, 변씨의 말은 처음보다 기운차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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