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교과교실제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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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최근 교육과학기술부는 교과교실을 통해 수준별, 맞춤형 수업을 활성화해 공교육의 만족도를 제고하기 위한 목적에서 교과교실제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현재 중·고교에서 교사가 수업할 교실을 찾아 이동하는 수업 방식 대신 교과목의 특성에 맞게 꾸며진 교과 전용 교실에 교사가 상주하고 학생이 이동해 수업을 듣는 교과운영 형태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중·고교에 적용하는 정책은 아니지만, 우리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공법을 택했다는 점에서 기대하는 바가 자못 크다. 교과교실제는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된 교육방식이다. 한국에서도 학생 중심의 교육을 강조하는 제7차 교육과정을 적용하면서 이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교과교실을 구비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행정·재정적인 지원의 부족으로 그동안 연구보고서 속에 묻혀 있어야만 했다.

정부가 이제라도 예산을 확보하고 교과교실제 운영을 통해 학교교육의 질을 제고하려는 노력은 바람직해 보인다. 두 가지 점에서다. 첫째, 각 교과목의 수업에 적합한 학습 자료와 방법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교과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함으로써 수업이 보다 내실화될 수 있다. 둘째, 학생의 관심이나 진로를 존중하는 선택 교육과정을 운영하거나, 학생의 수준을 고려하는 수준별 수업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 기반을 구축함으로써 앞으로 학교 교육과정 운영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교과교실제의 도입은 우리 학교교육사에 의미 있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교과교실을 꾸미고 학생들이 교과교실로 찾아가 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곧바로 공교육이 내실화될 것 같지는 않다. 교과교실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학교문화가 변화돼야 한다. 그러나 김치문화를 치즈문화로 손쉽게 바꿀 수 없듯이, 교과교실제의 성공에 필요한 방향으로 학교문화를 바꾸는 작업 또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과교실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단위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확대해 주어야 한다. 또 단위학교가 운영하는 교육과정에 적합하게 학생을 평가하고 그 내용을 기록할 자율성을 허용해줄 필요가 있다. 단위학교가 교육과정과 평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데 필요한 행정·재정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교과교실제 도입 방안을 보면 단위학교에 적합한 방식으로 학생을 평가하고 기록할 자율성을 허용할 것이라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학교교육이 교육과정보다는 평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평가방법의 변화 없이 교과교실제가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현재 학교에선 같은 학년 학생이면 모든 교과에 대해 동일한 문제로 평가를 하고 석차와 등급을 매긴다. 그러나 교과교실제 시행 학교가 수준별 수업을 하면서 시험은 동일한 문제로 보게 될 경우 학습한 내용과 시험 난이도의 불일치라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교과교실제가 활성화되려면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교육당국의 전향적인 검토가 뒤따라야 한다.

교과교실제 도입은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시범 운영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교과교실제의 운영으로 학교교육의 질이 제고되고, 학생·학부모의 학교교육 만족도가 높아지길 기대한다.

김재춘 영남대 교수·교육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