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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 전기자동차, 이젠 달리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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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국내 중소기업 레오모터스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본격 전기자동차를 개발했다. 대안 자동차 개발을 평생의 화두로 삼은 한 매니어가 10년 실패 끝에 거둔 결실. 이코노미스트 기자들이 직접 시승해 보고 합격점을 줬다. 국내 전기자동차 상용화의 전망과 과제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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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모터스의 전기자동차는 연료주입구에 충전코드를 연결해 충전한다. 이정용 사장은 한 번 충전하면 200㎞ 이상 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 고속 전기자동차는 더 이상 전기 카트가 아니었다. 가속 페달을 밟자 시속 120㎞를 훌쩍 넘어섰고, 언덕길도 잘 올라갔다. 레오모터스가 자체 기술로 개발한 파워트레인을 장착한 기아의 경차 모닝의 운전석은 배터리 충전량과 드라이브·파워모드 표시장치만 없다면 엔진 자동차와 차이가 없다.

“전 부품 국산화해 세계 3번째 개발 …세계 최초 전기장갑차도 만들어” #전기차 개발한 레오모터스 집중해부

차량 외부에 ‘무공해 전기자동차(Zero Emission Vehicle)’라고 표시하지 않았다면 외관도 시판 중인 모닝과 구별이 안 된다. 이정용 레오모터스 사장은 “배기량 2000cc 미만의 전 차종을 전기자동차로 개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차종의 엔진룸에 자체 개발한 전기차용 파워트레인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엔진 자동차의 트랜스미션을 그대로 쓸 수 있고 운전할 때의 느낌도 차이가 없다고 했다. 실제로 주행감에서 차이를 의식할 수 없었다.

박근혜 전 대표 시승한 美 ‘테슬라’보다 우수

기자가 레오모터스를 방문하기 이틀 전인 5월 5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샌프란시스코의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테슬라모터스를 방문했다. 5박6일간의 미국 방문 첫 일정이었다. 박수를 받으며 전기스포츠카 시승을 마친 박 전 대표는 “승차감이 일반 자동차와 같고, 조용하고 빠르다”며 “배터리로 가는 차인 줄 몰랐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도 이런 차를 만들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잘 안 알려졌을 뿐 한국에서도 전기자동차 시대가 개막됐다. 개발의 주역은 경기도 하남시에 자리잡은 중소기업 레오모터스. 이 회사는 미국의 AC 프로펄션, 일본 미쓰비시에 이어 지난 4월 말 세계에서 세 번째로 고속 주행이 가능한 전기자동차용 파워트레인을 개발했다.

레오가 개발한 파워트레인은 60kW급 모터, 최신형 리튬폴리머 배터리 파워백, 초정밀 배터리 매니지먼트시스템(BMS), 고성능 컨트롤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전기차는 초기 가속력이 뛰어나다. 레오 측은 자사 파워트레인을 장착한 모닝이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데 7.2초 걸린다고 밝혔다.

엔진 차 모닝보다 5초가량 짧다. 반면 전기차는 언덕 길에 약하다. 분당 회전수(rpm)가 많아지면 회전력(토크)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레오는 회전수의 영역별로 최고의 토크를 내게 하는 드라이브 모드와 언덕 길에서 모터가 힘을 잃거나 과열되는 것을 막아주는 파워 모드를 개발해 이 약점을 보완했다.

속도와 거리도 업그레이드했다. 최고 시속은 160㎞, 한 번 충전하면 200㎞ 이상(트랙 정속 주행) 주행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주행 중에 배터리를 충전시킬 수 있는 엔진 발전기를 달면 주행거리가 최대 800㎞(시속 100㎞ 기준)까지 연장된다. 무엇보다도 경쟁 관계에 있는 세 회사 중 유일하게 초정밀 BMS를 자체 개발함으로써 최고의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고 레오 측은 자평했다.

초정밀 BMS는 전기자동차 기술의 꽃이라고 불린다. 배터리를 충전하고 사용할 때 셀 간 전압 차를 고르게 유지하는 배터리 파워팩의 핵심 장치로 이게 없으면 배터리가 과충전되거나 과방전돼 배터리를 오래 쓸 수 없다. 기존의 전기자동차나 전기 오토바이의 운행 거리가 충전을 거듭할수록 줄어드는 건 바로 이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배터리 셀 수도 3사 중 가장 적다. 그만큼 배터리의 효율이 높다. 레오가 개발한 파워트레인은 공해 물질을 일절 배출하지 않는다. 레오 측은 “택시회사, 버스회사, 택배회사 등 차량의 운행 거리가 긴 회사들이 전기자동차를 이용하면 탄소 배출권이 생겨 별도의 수익을 챙길 수 있다”고 말했다.

연료비가 대폭 줄어드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사장은 “전기자동차의 전기요금은 기존 화석연료비의 10분의 1에 불과해 운수회사의 경우 2년이면 차 값을 뽑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 가정에서도 3300원이면 충전할 수 있습니다. 7시간가량 걸리죠. 이렇게 충전하면 200~250㎞ 주행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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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는 아연공기연료전지도 개발 중이다. 리튬 폴리머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는 3배 높고 가격은 5분의 1에 불과한 이 전지가 상용화되면 엔진 시대가 막을 내릴 것으로 레오 측은 내다보고 있다.

아연공기연료전지의 생산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대외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출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의 아연 생산량이 세계 1위기 때문이다. 엔진 대신 모터를 사용하면 자동차의 수명도 연장된다.

폭발행정이 반복되는 엔진과 달리 전기자동차는 진동이 거의 없다. 전기자동차는 또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이정용 사장은 “10년에 한 번씩 모터의 볼베어링만 갈아주면 되는데 비용은 5000원”이라고 말했다.

“전기자동차는 노 에미션(무공해), 노 메인터넌스(유지비 ‘0’) 비히클입니다.”

레오는 전기자동차용 모터도 개발하고 있다. 지금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모터는 산업용이다. 레오 측은 이미 특허를 출원했고 내년 초엔 양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레오모터스의 잠재력은 경영진의 면면에서도 읽힌다. 사장인 이정용 박사는 신개념 자동차 연구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대체 에너지 자동차 연구에 매달렸고, 전기자동차 개발에 뜻을 두고 북한의 평화자동차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모델 뻐꾸기와 휘파람이 그의 작품. 전략물자 반입에 대한 통제로 북한에서는 전기자동차 양산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2006년 레오모터스의 전신인 레오존을 차렸다.

“배고픈 창업가들이 목숨 걸고 하는 것”

강시철 회장은 경영학 박사 출신의 마케팅 전문가다. 오리콤 등 광고대행사에서 일했고, 세계적인 이벤트 업체인 홍콩 피코그룹의 노스아시아 사장을 지냈다. 김영일 부회장은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디자인연구소 상무, 이노션월드와이드 대표를 역임했는데 버스·상용차 부문과 글로벌 마케팅을 맡았다.

구로케이블TV 사장에서 자리를 옮긴 심상현 부회장은 국내 판매영업을 담당한다. 삼성그룹 출신인 배한욱 고문은 레오모터스의 미국 상장 관련 업무를 챙긴다. 레오는 나스닥 핑크시트에 등록돼 있다. 강시철 회장은 “레오의 BMS 같은 장치는 엔진 차를 만드는 대기업들이 개발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전기적 특성을 모르면 발상이 안 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풍토에서 이런 개발은 배고픈 창업가들이 목숨 걸고 하는 일입니다.”

이주장 KAIST 교수(전기 및 전자공학 전공)는 “기존 자동차 업체는 엔진을 못 버려 전기자동차에 대해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전기차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발전 속도로 볼 때 전기자동차의 성능은 5~7년 후 지금의 엔진 차 수준에 이를 것으로 봅니다.”

레오는 2007년 세계 최초로 전기장갑차도 만들었다. 현대로템의 의뢰로 개발한 이 장갑차는 유인·무인 겸용으로 소음과 배기열이 없어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다. 레오는 6월부터 오토바이 리스업체 바이크리스와 손잡고 이 회사가 리스하는 전기 오토바이를 공급한다.

언덕도 문제 없이 오른다는 뜻의 힐리스(Hilless)로 명명된 이 오토바이의 충전 비용은 엔진 오토바이 연료비의 10분의 1 수준. 수명은 엔진 오토바이보다 5배 긴 15년이다. 바이크리스 측은 이 오토바이를 주행거리에 따라 월 15만~30만원대에 임대할 계획이다. 레오 측은 “전기 오토바이 가격이 엔진 오토바이의 두 배 수준이지만 2~3년 리스료면 오토바이 값을 뽑을 수 있다”고 밝혔다.

레오가 하는 이 첫 양산은 철인산업이 맡았다. 필리핀의 푸에르토 프린세사 시와는 서민용 택시 격인 트라이시클을 대체할 저속형 택시를 공급하기로 조달 계약을 맺었다. 레오의 파워트레인이 들어가지만 가격을 4000달러대로 낮췄다. 개도국의 시내 주행용 전기차 시장을 겨냥한 제품이다. 대구시와는 마을버스 공급을 추진 중이다.

테즈카 오사무의 애니메이션 주인공 ‘흰 사자 레오’는 밀림에 들어가 왕이 된다. 그 과정에서 난폭한 경쟁자들과 싸웠고, 인간과 부딪쳤다. 전기자동차 관련 법제의 정비 문제 등 ‘배고픈 벤처 레오’ 앞에도 장애물은 있다. 양산 체제의 구축은 개발의 성공과는 별개의 문제다.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미지수다.

강 회장은 “레오는 완성차 업체가 아니다.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파워트레인 개발 업체를 고수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주행할 때 받는 바람, 차량의 진동, 태양광 등을 전기 에너지로 전환해 보려고 합니다. 궁극적으로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자동차를 운행하는 기술이 필요해요. 지구는 인간 없이 살 수 있지만 인간은 지구 없이 못 삽니다.”

이필재 편집위원, 이석호 기자·jel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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