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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아라리 난장 55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변씨는 그러나 봉환은 외면한 채 철규만 바라보며, "한선생도 알다시피 시골다방 풍속이란 게 어딜 가나 마찬가지여. 다방레지라는 것들이 하나같이 꼬부랑 라면머리 한 것은 고정적이고,가랑이 사이에다 강원도 고랭지 감자 한 개 쑤셔박은 것 같이 툭 불거진 씹두덩이 똑바로 들여다보이는 미니치마도 고정적이고, 배달갔다 다방으로 돌아오면, 손님들은 레지들 얼굴 쳐다보며 차를 주문하는 게 아니라, 그 가시나들 미니치마 속을 들여다보며 차를 주문하는 것도 고정적이여. 아침에 다방으로 꼬이는 유지들이란 작자들의 옷차림새는 더욱 가관이지. 이건 운동복 같기도 하지만, 그건 아니고, 잠옷 같기도 한데 또 생판 잠옷이라 할 수도 없지. 어디 가서 그런 옷을 용하게 찾아 입고 다방으로 들어서는데, 다방으로 들어서는 작자들이 둘이건 셋이건 고정적인 게 또 있어. 필경 오지랖에다 파 한 묶음 같은 열쇠 꾸러미를 차고 있다는 거여. 그러나 식은 찻잔 앞에 두고 저희들끼리 수군거리는 얘기는 들어볼 만하더군. " 외면한 채 쪼그리고 앉았던 봉환이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작자들이 무슨 이바구를 하고 있습디껴?" "그것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정적이여. 농축협에서 빌려 쓴 영농자금이나 축산자금을 어떻게 하면 떼먹거나 연기할 수 있을까. 하천부지를 불하받자면, 군청의 어느 놈을 구워삶아야 할까. 국도변에 생고기가든을 짓자면, 어떤 공작을 해야 할까. 뭐 그런 구름 잡아서 장롱 속에 집어넣겠다는 얘기들이여. " "형님 다방에서 들었다는 이바구들이 그기 전붑니껴?" "그래 전부다 왜? 다방레지 허벅지 못 만져보고 와서 임자가 섭섭한가?" "형님 말씀이 그렇게 실없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 카이요. 삼베바지에 물방귀 새는 소리나 다름없는 그런 허무맹랑한 말 듣고 온게 우리하고 무신 상관이 있습니껴? 우리가 하천부지 불하받아서 생고기가든이라도 지어보겠다 이겁니껴?" "임자, 자고로 입은 비뚤어져도 침은 똑바로 뱉으라 했네. 그게 어디 생고기가든인가 불고기가든이지. " "초장부터 허튼소리 그만 하시더. 우리는 한 코다리라도 팔아야 하는 명태장수지, 구름잡아 장롱 속에 집어넣는 봉평 유지들이 아닌기라요. " 마침 등산복 차림새인 40대 부부가 좌판으로 다가와 코다리 명태를 들춰보며 가격을 물었다.

명태를 팔게 되면, 봉평장에서는 마수걸이가 되는 셈이었기에 봉환은 첫손님을 놓치지 않으려고 처음부터 화끈 달아올랐다.

"우리는 물건 놓고 남 속이고 파는 사람들이 아입니더. 선생님은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코다리 명태들은 연안에서 잡은 연안태가 아니라, 모두가 원양태들이라요. 원양태중에서도 보시라고 가져온 이 견본매치로 몸뚱이가 길고 날씬한 것은 캄차카에서 잡은 캄차카태라 카고, 이 견본매치로 끼럭지 (길이)가 짧고 통통한 것은 베링해에서 잡은 베링태라 카는 깁니더. 또 일본 구시로해안에서 잡은 구시로태가 있는데, 그거는 우리 같은 전문가가 아니면, 두 눈을 빤히 뜨고도 우리나라 연안에서 잡은 연안태로 속고 사기가 십상입니더. 몸이 가늘고 홀쭉한 것이나 건조를 마치면 무게가 가벼운 것이나 맛도 비슷해서 소비자들은 연안태하고 구별할라카면 한참 힘들지여. 다만 연안태하고 구별하는기 있다면, 구시로태는 창자가 많이 들어 있어서 명란젓이나 내장젓을 담글라카면, 구시로태를 많이 사지요. 우리가 팔고 있는 거는 원양태중에서도 우리나라 연안태하고 맛이 비슷한 구시로태니까, 내막이 그렇다카는 거는 아시고 들여가시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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