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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마스크 착용 지시” 출근길 약국마다 장사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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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일 오전 고베(神戸)시 주오(中央)구의 대형 약국 앞. 바쁜 출근길이지만 마스크를 사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면서 행렬은 순식간에 50여 명으로 늘어났다. 40대 중반의 한 회사원은 “회사에서 착용하라는 지시를 받고 갑자기 사게 됐다”고 말했다. ‘마스크 파동’이 일면서 금세 마스크가 동난 곳도 속출하고 있다.

19일 일본 고베시의 한 약국 앞에서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1995년 대지진으로 훼손된 관광도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애쓰던 고베는 신종 플루가 확산되면서 도시 이미지에 다시 큰 타격을 입었다. [고베 AP=연합뉴스]

오사카(大阪)시 니시(西)구에 거주하는 여성 회사원(30)은 18일부터 휴가를 시작했다. 오사카·고베 일대의 4034개 학교가 집단 휴교에 들어가면서 등교하지 않는 초등학교 1년생 아들을 마땅히 돌봐줄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에 일이 많아 오래 쉴 수 없다”며 “학교가 빨리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1N1)가 급속히 번지고 있는 일본 간사이(關西) 지역에서 19일 오후 11시 15분 현재 확진환자가 193명으로 늘어나면서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감염자 층도 고교생에서 유아와 고령층 등 전 연령층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감염자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2900명에 달해 환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고베는 1995년 1월 대지진으로 6400여 명의 인명이 희생된 데 이어 14년 만에 신종 플루가 창궐하자 큰 충격에 휩싸였다. 어렵게 관광도시의 옛 명성을 되찾아온 고베에선 그동안 쌓아올린 도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는 걱정도 나온다.

이 같은 혼란은 일본 정부의 과도한 방역 체제가 부채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신종 플루의 ‘원천 봉쇄’를 위해 해외에서 들어오는 여행객 전원에 대해 검역을 실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검역망에서 드러나지 않은 감염자들이 바이러스를 옮겼을 것”이라며 원천봉쇄 방역체제의 허점을 지적했다. 아직 정확한 경로는 규명되지 않았지만, 공항에서의 방역망이 뚫리고 지난 주말 순식간에 감염자가 확산되면서 혼란이 본격화됐다. 간사이 지역의 많은 학교가 일제히 폐쇄된 데 이어 공연·스포츠, 각종 행사와 호텔 예약은 물론 수학여행이 잇따라 취소됐고 정상적인 시민 생활에도 막대한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과민 반응은 다양한 형태로 사회적 비용을 높이고 있다. 효고현에서는 등교하지 못한 일부 학생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가라오케에 기웃거리자 감염을 이유로 출입을 거절당했다. 갈 곳 없는 학생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다. 신종 플루 증상이 가볍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결국 오사카부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지사는 “이래서는 오사카가 유지되지 못한다”며 중앙정부에 대책 완화를 요청했다. 후생노동성은 이를 일부 받아들여 증상이 가벼운 환자는 집에서 회복하도록 권고하고, 기내 검역도 사회적 비용만 가중시킨다는 판단에서 이번 주 내로 중단키로 하는 등 대책 강도를 크게 완화시키기로 했다.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후생노동상은 “전문가들에게 신종 플루가 일반 감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의견을 듣고 있다”며 대응 완화 방침을 밝혔다. 주요 일본 신문들도 19일 사설에서 “비현실적인 과민 대응으로 사회적 혼란을 부채질해선 안 된다”며 “침착한 대응으로 혼란을 피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일본 정부의 이런 혼란은 지나친 자신감과 과민 반응이 빚어낸 결과다. 일본 정부는 “일본을 안전지대로 만든다”며 방역수준을 과도하게 높이고, 정확한 정보 제공보다는 과도한 경계심을 강조해 휴교·경제활동 위축 등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 것이다.

오사카·고베=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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