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경제대란 원인의 허와 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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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잘못은 지도층들이 저질러 놓고 고통은 죄없는 국민이 당하는 것' 을 가슴 아파하는 것이 어찌 새 대통령뿐이겠는가.

그러므로 이번 경제파탄의 책임을 반드시 밝혀 이러한 국가경제의 대환란과 국민적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우리들 모두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앞으로 있을 경제청문회에서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담당했던 인사들의 '변명' 은 대개 다음과 같은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현 경제환란은 본질적으로 국내외적 여건악화에 기인했다고 강변할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소위 4고 (高) , 즉 공장부지 등 땅값.물류비용.임금상승률.국내 이자율 등 네가지가 동남아 후진국들은 물론 미.일 등 선진국보다 더 높았으니, 이러한 고비용.저효율 속에서 어떻게 우리 경제가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경제구조적인 문제는 경제수석이나 장.차관인 우리들 힘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성질이 아니지 않았느냐. 거기에다 대외적으로는 94년 중국화폐의 45% 평가절하와 95년이래 무려 50% 이상의 일본 엔가의 하락으로 우리나라 수출실적이 중국의 저가품과 일본의 고가품 양쪽의 협공으로 악화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주종 수출품이었던 반도체값의 세계적인 폭락으로 우리 경상수지가 악화된 것은 불가항력적인 국제시장 여건의 변화 때문이지 않았느냐. 이러한 국내외의 기본적 경제여건 악화에다 지난해 우리 환란 (換亂) 의 직접적인 이유는 97년 봄부터 시작됐던 동남아 국가들의 외환위기, 특히 7월초 태국 바트화의 평가절하를 기점으로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 등의 환란과 주가폭락이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 그래도 10월 중순까지는 6%대의 실질 경제성장률과 4%대의 물가안정을 기록하는 등 우리 경제의 기본은 튼튼했다.

그런데 동남아 외환위기가 10월말 갑자기 북상해 홍콩달러를 공략하고 홍콩주가가 폭락함으로써 그 여파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아시아로 확대된 환란의 태풍권에 들게 했었다 등등. 대강 이러한 요지의 변명은 언뜻 국민들이 듣기에는 그럴듯한 변론이요, 국내외의 경제동향까지 심층분석한 상당히 고차원적인 해석이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지금의 경제대란의 근본적 원인규명을 호도 (糊塗) 하고 자기들의 책임을 국내외적 상황변화에 전가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왜 4고 (高) 의 경제구조를 갖게 됐는가.

철저한 정부규제로 자본시장의 육성이 더뎌 국민들의 높은 저축이 금융자산보다는 자연히 골프장 회원권을 포함한 부동산 관련 자산에 몰리게 되고 거기에다 후진적인 토지관리정책으로 땅값은 천장을 모르고 올라갔다.

또 수많은 관공서 도장을 받느라 공장 하나 지으려면 몇년이 걸리니 공장건설비가 폭등한 주원인은 정부관료들에게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높은 물류비용도 정부가 경부고속철도 건설 등 전시성 사업에만 역점을 두고 정작 필요한 항만.도로의 신축.확장.보수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인색했으며, 우리나라 운송업은 과도한 정부규제로 낙후했으니 이 또한 정부실책 때문이었다.

정치세력의 눈치만 보며 보신주의적 정책추진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를 지연시켜 기업경쟁력을 퇴보시킨 것도 경제장관들의 책임이 큰 건 말할 것도 없다.

관치금융으로 금융산업은 낙후되고 해외자본의 유입을 이런저런 핑계로 막아놓았으니 우리나라 이자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렇듯 4고는 과도한 정부규제와 당국자들의 경제실책에 주된 이유가 있었다.

중국과 일본의 환율이 급변할 때 왜 우리 외환당국은 낮잠만 자고 있었던가.

또 우리나라의 환란을 동남아 외환위기에 떠미는 것도 이현령 비현령 (耳懸鈴鼻懸鈴) 이다.

만약 지난해 10월말 홍콩의 금융위기가 우리나라 환란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면 왜 대만경제는 지금도 건재하며 거의 1천억달러에 가까운 외환보유고로 오히려 자기 주변국가들을 도와주겠다고 나설 정도인가.

지리적.정치적.경제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대만이 홍콩과 훨씬 긴밀한 관계이니 동남아와 홍콩의 환란이 먼저 대만에 상륙했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우리나라의 현 경제대란은 국제 경제여건의 악화나 동남아 외환위기 때문이 아니라 지난 10여년간 정부 경제정책의 실수로 인한 인재 (人災) 다.

박윤식 〈조지워싱턴대 교수·국제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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