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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의 중국산책] 무덤에서 먹구름 부르는 자오쯔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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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이야기다.
베이징에서 알고 지내던 요미우리 특파원을 찾아갔다가
문전 박대를 당했다.

"더 이상 무얼 알아내려고 하는가. 너도 똑같은 놈이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그의 사무실 문 앞에서 쫓겨났다.

훗날 자초지종을 풍문으로 듣고서야 그의 '무례함'이 이해됐다.
당시 요미우리 베이징 지사에는 3명의 특파원들이 일하고 있었다.
내가 찾아간 건 그 중 캡에 해당하는 인물인데,
서열 두 번째 해당하는 특파원한테 문제가 생겼던 때였다.

그 문제란 베이징 특파원들 사이에선 자칫 잘못했다간
중국에서 쫓겨 나기 십상인 '자오즈양' 취재와 관련된 것이었다.

자오즈양은 1989년 6.4 천안문 사태 때
시위에 나선 학생들에 대한 동정적인 태도로 실각한 뒤
이후 2005년 1월 사망할 때까지 가택 연금에 처해졌던 당시 총서기다.

그는 중국 당국이 '동란'으로 규정한 6.4 사태 성격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개진할 수 있는 인물로 서방 기자들 입장에선
그의 말 한마디만 들어도 대단한 특종이 되는 건 불문가지 사실이었다.

그러나 베이징에서 어디 그게 가당한 일인가.
그 위험을 무릅쓰고 요미우리 특파원이 자오에게 접근했다가 발각돼
내가 요미우리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는 거의 쫓겨나게 됐던 상황이었다.
그때문에 캡에 해당하는 특파원의 신경이 예민할대로 예민해져 있었고...

자오가 사망한 지 몇달 후인 2005년 봄엔
싱가포르 스트레이트 타임지의 홍콩 특파원이던
청샹이 중국 당국에 붙들렸다.

자오의 생전 대화록을 입수하러 중국 광저우로 갔다가
체포됐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6.4 천안문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으며,
당시 학생운동을 폭력으로 진압하자고 누가 주장했는가 등
자오의 증언이 가지는 파괴력이 엄청나기에
중국 당국은 막으려 하고, 외부에선 그 증언을 얻기 위해
보이지 않는 처절한 싸움이 진행됐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이 간다.

헌데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지 않는가.
마침내 자오쯔양의 육성 테이프를 바탕으로 한 증언이 확보돼
5월 19일을 기해 전 세계에 깔리게 됐다.

이미 미국과 홍콩 언론을 통해
6.4 사태에 이르는 과정이 자오의 증언으로 속속 공개되고 있다.
양상쿤이 비상계엄을 제안했고,
이에 대해 당중앙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는 투표도 없이 결정됐다는 사실 등...

자오의 주장에 따르면
6.4 천안문 사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인사는 별로 없어 보인다.

자,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 무슨 일이 전개될 것인가.
중국 내부에선 우선 자오의 육성 테이프가 새 나가게 된 내부 조사가
한창 벌어지고, 또 이에 대한 문책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홍콩에선 서점에 깔릴 자오의 책을 빌미로
그렇잖아도 미묘한 '천안문 사태 20주년'을 계기로
'6.4 사태 재평가'를 요구하는 거센 집회가 열리지 않을까 싶다.

해마다 6.4 사태에 즈음해 홍콩의 빅토리아 광장을 메우던
홍콩인들이 올해엔 기록적인 숫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이를 계기로 서방 언론은 'Tiananmen Massacre'란 표현과 함께
한껏 중국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중국 사회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한바탕 정치 풍파'
(春夏之交的一場政治風波)라고 하면서 20년을 버텨온 중국 정부는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 것인가.

인터넷의 발달로 미국과 홍콩 소식도 접할 수 있는 중국 시민들이
자오쯔양의 폭탄과 같은 증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행동할까.

20년 전 5월 19일은 자오쯔양이 실각한 날이다.
이 날에 맞춰 무덤 속에서 전하는 자오쯔양의 증언이 책으로 세상에 나와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중국에 또다시 먹구름을 부르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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