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재·보선 참패와 분권형 대통령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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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4.30 재.보선 결과 꼭 1년 만에 여대야소가 무너지게 됐다. 대통령제에서 국회의원 재선거 6곳의 의미는 기껏해야 국회 내 상임위원장의 배분에 영향을 주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게 보통이지만 참여정부가 분권형 대통령제, 일명 책임총리제를 들고 나왔기 때문에 국회의원 6석은 내각 교체를 초래할 수도 있을 정도의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책임총리제 공약에 이어 당선된 뒤엔 총선 전까지는 순수 대통령제로, 2004년 총선 후에는 원내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 혹은 정파 연합에 총리 지명권을 주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정부를 운영하겠다고 천명했다. 이후 '중대선거구제를 받아들이면'이라는 전제조건을 달았지만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한 언급은 계속됐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쓰나미로 이 같은 말은 한때 쑥 들어갔다. 모두 잊은 듯했던 책임총리제가 다시 등장한 것은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얻고 나서다. '정당책임제' '책임장관제' '책임총리제' 등의 이름으로 유력 정치인들이 속속 입각하면서 대통령제가 내각제적으로 운영되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시범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시범 운영되고 있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의회 구성이 내각 구성에 영향을 주는 일반적 의미의 분권형을 의미하는지, 의회 구성과 상관없이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만이 권력을 나누는 것을 의미하는지, 혹은 총리가 정치인 출신이 아니라고 해도 총리에게 실질적 권한을 나눠 주는 것을 의미하는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소야대 이후에도 분권형 대통령제가 계속 운영되는 것인지를 국민은 알지 못한다. 어느 경우이든 모두 한국 정치 발전에 미칠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시범 운영되고 있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일반적 의미의 분권형을 의미한다면, 여소야대로의 전환은 내각 교체로 이어질 수 있다. 여당과 일부 야당이 연합해 총리를 비롯한 내각을 재구성하거나 혹은 야당이 연립내각을 구성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올 10월 또 한번의 재.보선 결과 각 정당의 의석비가 달라진다면 내각 구성 역시 다시 요동치게 될 것이다. 내각의 잦은 교체 못지않게 큰 문제점은 동거정부의 출현 가능성이다. 대통령과 내각의 정책적 조화가 어려움은 물론 협상능력이 극히 취약한 우리 정치인들이 과연 총리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을 쉽게 조화시킬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분권형이 의회 구성과 상관없이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 간에 권력을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면 여소야대 이후에도 현재의 내각을 그대로 유지시켜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상당한 정치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의원직과 정부직을 겸직할 경우 양쪽으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국고가 지급된다. 의원들로 하여금 이 같은 노다지를 캐기 위해 대통령 선거운동에 '올인'하도록 만들고, 대선 승리 뒤엔 대통령 견제가 아니라 정부직에 임명되기 위해 대통령의 눈치만 보게 할 가능성이 크다.

비정치인을 총리로 임명해도 문제다. 국민으로부터 직접 정당성을 부여받지 않은 공직자가 그렇게 막대한 권력을 행사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논란이 뒤따른다. 또 여대야소에서는 분권형, 여소야대에서는 순수 대통령제로 운영한다면 이것은 원래 분권형 대통령제가 여대야소에서는 순수 대통령제로 운영하다가 여소야대를 돌파하기 위해 의원내각제형으로 운영되는 것과는 정반대라는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국정 운영의 불예측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향후 권력구조를 보다 명확히 규율하는 헌법으로의 개헌이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장기적 고려와 국민적 합의 없이 단기적 시각에서 국정 운영이 실험되는 것은 자제돼야 한다는 점이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