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석씨가 뽑은 에쿠니 가오리 베스트 5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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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호 03면

『반짝반짝 빛나는』
(김난주 옮김, 소담 펴냄)

『반짝반짝 빛나는』을 보면 수많은 독자가 왜 에쿠니 가오리에게 반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정상적으로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이미 심각하게 내상을 입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상흔이 무엇이고, 그들이 어떻게 위로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그들이 참고 견디고 있는지를 에쿠니 가오리가 ‘반짝반짝’ 그려 낸다.

『차가운 밤에』
(김난주 옮김, 소담 펴냄)

『호텔 선인장』은 현실이 아니라 우화를 읽는 듯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어쩌면 에쿠니 가오리가 그리고 싶은 세계는 현실이 아니라 환상일지도 모른다. 『차가운 밤에』는 에쿠니의 동화적 상상력, 그리고 빛나는 찰나를 포착해 내는 통찰력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는 단편집이다. 21편의 짧은 이야기 속에서 상상력이 어떻게 피어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미야 형제』
(신유희 옮김, 소담 펴냄)

제대로 여성을 만나 본 적도 없는 중년의 두 남자가 사랑을 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로맨틱 코미디. 가장 에쿠니 가오리답지 않은 소설이지만 은근히 익살스럽고 한편으론 더욱 쓸쓸한 『마미야 형제』야말로 에쿠니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마미야 형제는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인 것 같지만, 그것이야말로 여성의 눈에 비친 순진한 남자의 초상이 아닐까?

『도쿄 타워』
(신유희 옮김, 소담 펴냄)

중년 여성이라면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이야기. 마흔 살의 시후미는 친구의 아들인 도루와 사랑을 나누면서도, 어떤 죄책감이나 불안감도 없다. 아니 오히려 도루의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도 느껴진다. 장벽을 뛰어넘고, 퇴로를 막아 버린 채 정면으로 부딪치는 진짜 남자의 사랑이 에쿠니의 명징한 문체로 펼쳐진다. 물론 이건 판타지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
(김난주 옮김, 소담 펴냄)
운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중요한 것은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헤어짐을 받아들인 채 눈물을 흘리고 다시 살아가는 것이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에 실린 12편의 단편에서 에쿠니 가오리는 그동안 그려 왔던 슬픔·상실·고독의 정서를 알차게 반복한다. 우리 인생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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