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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표류]신정부-구내각 동거 각부처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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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JP총리' 임명동의안의 국회처리 지연으로 국정 혼선과 행정 공백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새 정권의 첫 내각구성이 늦어짐에 따라 '신 (新) 대통령과 구 (舊) 내각' 이 혼재하는 기묘한 동거체제는 전례없는 일이다.

정부직제 개편계획에 따라 진행할 업무가 중단상태며, 시급한 현안들이 뒤로 미뤄지고 있다.

대다수 공무원들은 일손을 놓고 있다.

高총리 자택으로 이사

▶총리실 = 고건 (高建) 총리는 25일 간부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공관을 떠나 혜화동 자택으로 이사하고 관용차까지 반납했다.

그런데 총리임명동의가 무산되면서 26일 아침 청와대 김중권 (金重權) 비서실장으로부터 정상출근을 통보받고는 부랴부랴 출근. 高총리는 오전9시30분 예정돼 있던 이임식을 취소하고 '국정공백방지 관계장관회의' 를 주재하면서 각 부처 장관의 출근상황을 체크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 그러나 高총리는 오후 힐튼호텔에서 열리는 ' (대통령 취임식에 참가한) 해외동포를 위한 리셉션' 엔 불참했다.

高총리는 외무부에서 "총리주재로 예정된 행사니까 현 총리가 가야 한다" 고 요청했으나 '모양이 안좋다' 며 극구 사양. 결국 총리는 안됐지만 예정했던 리셉션의 주인공인 JP가 대신 참석했다.

▶재정경제원 = 25일 오후 과천청사 1동 앞에 붙어 있는 '재정경제원' 간판을 떼고 '재정경제부' 간판을 새로 달았지만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공포되지 않자 종이로 가려놓은 상태다.

재경원 관계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27일 도쿄 (東京)에서 시작되는 국가경제설명회 (로드쇼) 문제. 한 관계자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외채 만기연장인데 여야가 합의도 이루지못하는 나라 대표단의 말이 제대로 먹혀들지 고민" 이라고 토로했다. 실무자들은 새 정권의 실력자를 단장으로 보내달라던 채권은행단측의 요구도 들어줄 수 없게됨에 따라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다시 추락할까 걱정하고 있다.

금융정책실은 업무공백으로 인한 차질이 가장 심각한 부서. 종금사 2차폐쇄 등 현정부에서 끝내야할 일은 가까스로 끝내놓았지만 금융기관 구조조정, 서울.제일은행 매각 등 새 정부에서 추진해야할 시급한 현안들을 계속 뒤로 미뤄선 곤란하다는 우려가 터져나오고 있다.

地自體 국고보조 안돼

▶내무부 = 정부조직개편안이 통과되는 대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 모두 1천5백억원의 국고보조금을 지원할 계획이었으나 국회공전으로 묶어둔 상태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에서 고용창출 및 경기회생을 위해 조기발주할 계획이었던 각종 공사가 연기되자 "지역경제가 더욱 어려워진다" 며 내무부에 조속한 해결책을 촉구하지만 "현재로선 뾰족한 방법이 없다" 는 대답만 듣고 있다.

▶교육부 = 법에 의해 2월말까지 99학년도의 대학입학전형 기본계획을 발표해야 되지만 직제개편이 늦어져 3월초에야 가능할 전망이다.

관계자는 "대입기본계획 원안을 거의 확정했으나 신임장관 임명이 늦어져 결재를 받지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교 3년이 되는 수험생들의 궁금증을 빨리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고 걱정했다.

감원 대상 몰라 뒤숭숭

▶통상산업부 = 산업자원부로 이름이 바뀌는 통상산업부는 26일 정해주 (鄭海주) 장관과 한덕수 (韓悳洙) 차관이 평소대로 출근해 업무보고와 결재를 처리하는 등 공백 최소화에 노력. 하지만 과천 3동 건물에 같이 있는 농림부는 기존 간판을 그대로 달고 있는 반면 통산부는 전날 오후 산업자원부로 간판을 바꿔 달고서도 흰 비닐로 가려놓은 채 개봉을 못해 대조. 이날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 부설 대학원 졸업식때 보낸 화환의 명의를 산업자원부장관에서 급히 통상산업부 장관으로 고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특히 통상관련 업무와 중소기업정책 업무가 각각 외교통상부와 중소기업청에 넘어가는 등 이동 및 감원 직원 1백27명에 대한 인선도 따라서 늦춰지면서 뒤숭숭한 분위기.

▶정보통신부 = 강봉균 (康奉均) 장관이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장관 공석상태. 그로 인한 내부동요는 상당한 편이다.

장관직무대행을 맡은 박성득 (朴成得) 차관은 예정에 없던 간부회의를 소집해 "장관 공석에 따른 행정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업무에 충실해줄 것" 을 당부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후임장관이 누가 될지에 대한 하마평을 주고받으면서 업무를 놓고 있는 실정. 한 관계자는 "통상적인 업무야 문제가 없겠지만 장관이 없을 경우 중요 정책결정은 어렵지 않겠느냐" 며 "행정부의 업무지장은 피해가 곧바로 국민들에게 간다는 점에서 장관 공석사태가 조속히 해결됐으면 한다" 고 말했다.

경부고속철 입찰 지연

▶건설교통부 = 내각구성 지연으로 인해 지난해 9월 기본계획을 전면 재수정했던 경부고속철도사업이 총투자비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 이달중 사업자를 선정키로 했던 대전 이남 3개 공구 7천8백억원 규모의 공사입찰이 지연되는 등 2005년 개통 목표의 전체 사업추진에도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 지난달 출범한 신공항운영기획단도 간판만 내건 채 실무진을 확보하지 못해 개점휴업 상태다.

▶보건복지부 = 새 장관 임명이 늦어지면서 보건국.의정국.약정국.식품정책국 등 개편되는 부서의 행정업무 처리가 지연 또는 마비될 것으로 예상하며 대안 마련에 골몰. 특히 신설되는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 이적되는 식품국.약정국.의료장비과 직원들은 발령이 늦어지면서 과천에서 불광동으로 이전도 못하고 사무실에 모여앉아 커피를 마시며 소일하는 상태. '영향평가' 통합 차질

▶환경부 = 직제개편에 따른 사무실 재배치공사를 끝내기로 하고 업자와 계약까지 마친 상태에서 기약없이 늦어져 위약금을 물어야 될 판. 이와 함께 평가제도과와 평가분석과의 통합이 늦어져 현재 추진중인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해 교통.인구.재해 등 4대 영향평가의 통합작업에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총무처 = 내무부와 합쳐 행정자치부로 재탄생하기 위해 준비를 마친 상황인데 조직법이 공포되지 않아 그냥 자리만 지키는 처지. 한 간부는 "부처가 바뀌고 새 장관이 보직을 정해줘야 일을 시작하는데, 아무 것도 안되니 그냥 쉴 수밖에 없지 않느냐" 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 한편 법령에 대한 유권해석의 권한을 가진 송종의 (宋宗義) 법제처장은 "아침부터 다른 부처 장관들로부터 '오늘 출근해야 하느냐' 라고 묻는 전화를 받아 '아직 장관이니까 그대로 자리를 지켜라' 고 했다" 며 "이번에는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힘들다" 라고 한마디. 吳장관은 출근도 안해

▶공보처 = 정부조직개편으로 공중분해될 상황에서 총리임명동의 차질로 조직개편이 자동연기되자 "도대체 어디로 출근해 무슨 일을 해야 되느냐" 며 황당해하는 모습. 오인환 (吳仁煥) 장관은 25일 오후 이임식까지 마쳐서인지 26일 아예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

일반직원들도 짐을 모두 싸 휑한 사무실에 앉아 자신들의 처지를 자조 (自嘲) 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한 직원은 "명색이 공보처인데 이미 신문도 끊고 방송케이블도 다 철거해 할 일도 없다" 며 "정리해고를 당하든 말든 빨리 새 장관이 와 정리해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정치·경제·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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