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문화 엘도라도 전통접목 통해 부활"-브라질 살레스감독 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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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삼바와 축구의 나라,가난한 정치후진국' 정도가 브라질의 주된 이미지다.

그러나 영화문화에 관한 한 이 나라는 무시할 수 없는 탄탄한 전통을 갖고 있다.

50, 60년대 브라질에서 발흥했던 '시네마 노보' (새로운 영화) 운동을 빠뜨리고는 세계영화사가 온전히 기술되지 않는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그림으로써 시작된 '시네마 노보' 는 60년대 들어 가난과 굶주림, 폭력에 신음하는 브라질의 상황을 담아내는 보다 혁명적인 방식을 취함으로써 독자적인 영화 미학을 구축할 수 있었다.

글라우버 로샤, 넬슨 페레이라 도스 산토스, 루이 구에라 등이 이 시기에 활동한 감독들이었다.

그러나 70년대에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브라질영화는 침묵과 침체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그러다 최근 개혁 지향적인 민간대통령 체제 아래에서 영화진흥책이 활발히 재개되면서 브라질영화는 부활을 꿈꾸게 되었다.

이번 베를린영화제에서 금곰상을 탄 '중앙역' 은 돌출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이같은 역사와 정책이 낳은 산물인 것이다.

올해 43세인 월터 살레스감독은 다큐멘터리로 영화의 길에 들어섰고 '중앙역' 이전에 두편의 장편영화를 만든 경험이 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브라질의 젊은 감독들은 지금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네마 노보' 의 전통에 서서, 거기에 자신들의 영화를 접목하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 '중앙역' 은 아버지를 찾아나선 아이의 여정을 통해 갈등하는 오늘날 브라질의 도.농관계를 보여준다. 로드무비라는 형식이 좀 구태 아닌가.

“그렇지 않다. 로드무비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유명감독들의 관심사였다. 로드무비에서 등장인물과 배우들은 미리 계산될 수 없는 것과 계속 부딪힌다.

감독은 (비록 영화속에서지만) 조작된 부딪힘이 아닌 사실과의 조우를 애써 노린다.

이를 통해 진실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나 빔 벤더스도 70, 80년대에 이 장르를 다시 시도하지 않았는가.”

- 거리야말로 한 사회를 관통하는 숨은 핵심을 드러낸다는 뜻인데 이 영화는 브라질의 북동지방을 다룬 영화의 전통과 어떤 관계가 있나.

“넬슨 페레이라 도스 산토스, 글라우버 로샤, 루이 구에라의 영화들은 브라질의 극장 (브라질 사람들) 을 위해서 만든 것이다. 그들은 그 영화들로 오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그 유산에 입각해서 촬영을 하고 있다.”

- 브라질영화의 전성기는 30년전이었다.

“브라질은 급격히 변화되었다. 당연히 브라질 사람들이 사는 환경도 변했다. 이러한 변화의 흔적을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조건하에서 표현해야하는 것은 아주 긴장된 작업이지만 그런 작업이야말로 영화감독의 즐거움이다.”

-평론가들은 '시네마 노보' 의 재탄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너무 거창한 말인가.

“우리가 무 (無) 로 부터 어떤 획기적이고 새로운 것을 만들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시네마 노보' 전통에 다시 접목시키고 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노장들이 돌아오고 있고 젊은 감독들을 통해 추진력이 생기고 있다.”

-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영화는 앎 (지식) 을 만들어내야 한다.

가령 키아로스타미나 첸 카이거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TV의 상투화된 이미지보다는 우리에게 훨씬 친숙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모르던 것을 새로 알게하는 아주 놀라운 형식이다.”

그는 '중앙역' 이 선댄스영화제에서 기립박수를 받았고 뉴욕타임스는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찬사를 보냈다고 자랑했다.

자국영화의 전통에 바탕둔 이 40대감독의 자부심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베를린 =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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