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세계 자동차업계 지각변동 … 한국의 대응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1면

19세기 말 자동차 산업이 태동한 이래 수백 개의 자동차 메이커가 흥망을 거듭해 왔다. 1990년대 ‘생산 규모로 빅5만 살아남는다’는 이론 아래 세계 자동차 산업에 몰아친 인수합병(M&A) 열풍으로 세계 주요 자동차업체들은 10여 개의 그룹으로 재편됐다.

그러나 연 6000만 대를 약간 웃돌 정도의 제한된 세계 자동차 수요를 놓고 볼 때 10여 개도 많은 듯하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보다 적은 수의 그룹으로 통합되는 과정은 시장에서 자연스레 모색돼 왔다. 이번 금융위기는 자동차 수요를 일시에 격감시켜 공급과잉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냈다. 모두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다.

자동차 시장 경쟁지도(Competition Map)의 변화를 보면 향후 추세를 가늠해볼 수는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그동안 자유주의 개방경제에서 상대적으로 역할이 미약했던 각국 정부의 역할 증대다. 빅3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규모 지원이나 구조조정 압력, 유럽 내 정부들의 자국 내 자동차업체들의 M&A나 구조조정 개입 등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상상하기 어려웠던 변화다. 친환경차 지원 같은 향후 핵심 전략에 대해서도 정부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 자동차 시장의 주 전장(戰場)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중국판 ‘빅3’ 가능성이다. 현재 120개가 넘는 중국의 자동차업체들은 외국 모델의 라이선스 생산이나, 품질 낮은 저가의 독자모델을 만드는 수준으로 우리나라의 1980년대와 유사하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난립한 자동차업체들을 3강을 중심으로 한 10개로 통합하겠다고 천명했다. 대규모 내수 기반과 선진 기술을 갖춘 중국 브랜드의 등장이 멀지 않은 것이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21세기 들어 환경이 이슈가 되면서 경량화, 저연비를 위한 친환경차가 새로운 경쟁요소가 됐다는 점이다. 소형차는 마진이 낮아 대량 판매를 하지 않으면 수익성을 맞추기 어렵다. 따라서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업체 간 제휴와 노동조건의 유연성이 중요하다. 궁극적인 친환경차는 하이브리드카 같은 과도기적 형태가 아니라 유해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연료전지차가 대세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쟁지도의 변화가 한국 자동차 산업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우선 GM대우와 르노삼성은 모기업의 방침에 따라 운영되므로 우선 각자 그룹 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내야 한다. 현재 산업은행이 GM대우 지원을 위해 GM과 협상하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독립해서는 자생력을 가질 수 없는 조직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모기업과의 관계 유지는 필수적이라고 본다.

현대·기아차는 엔진, 섀시 같은 기본 기술에서는 세계 수준에 와 있다. 또 소형차의 개발기술도 앞서 있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의 생존은 기술만이 아니라 조직운영, 노조관계, 경영효율, 브랜드 등을 아우르는 총합력의 승부다. 강력한 중앙집권식 기업문화로 단기간에 세계 6위의 생산 규모를 이루어냈으나, 강성노조와 상대적으로 빈약한 내수를 기반으로 친구(전략적 제휴) 없는 ‘나 홀로’ 성장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의문이다. 원가 절감과 다양한 수익원 개발을 위한 경쟁업체와의 공동 개발이 요구된다. 떠오르는 중국의 등에 올라타야 새로운 기회가 보일 것이므로 중국 업체에 차체 설계 및 기술(라이선스)을 판매하는 등의 제휴가 절실하다.

정부도 특정 산업에 대한 특혜라는 좁은 시각을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자동차 산업 지원에 나서야 한다. 이미 자동차 산업은 국가경쟁력의 선두에 서 있고, 각국 정부가 앞다투어 이런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황순하 GE코리아 전무·전 아 더앤더슨 컨설팅 자동차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