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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유대인과 화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소수민족집단은 흑인과 유대인이다.

그런데 미국사회에 깊은 뿌리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이 두 집단의 위상은 서로 사뭇 대조적이다.

인구의 15%를 점하는 흑인은 오랫동안 미국 역사의 피해자였으며, 오늘날도 교육과 소득수준에서 열악한 위치에 있다.

반면 인구의 2% 남짓한 유대인은 경제력과 고급전문직의 점유율에서 인구비율과는 판이한 우세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사회에는 오랫동안 '유대인의 음모 (Jewish Conspiracy)' 라는 말이 떠돌아 왔다.

소수의 유대인이 거대한 미국의 정책결정에 집중적인 영향력을 끼침으로써 유대인의 이익에 맞는 방향으로 끌고간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건국을 지원한 일로부터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이스라엘을 꾸준히 옹호한 정책이 모두 이런 의혹의 대상이 됐다.

실제로 미국의 선거에서는 유대인 표의 단결력이 언제나 중요한 변수로 의식돼 왔으며, '엑소더스' 나 '쉰들러 리스트' 같은 영화도 이스라엘을 위한 유대인의 로비활동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유대인에 대한 이런 의혹은 미국에서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산업혁명기의 유럽에서 유대인은 시대변화에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 경제계와 여러 전문분야에서 탁월한 위치에 올라섰다.

기독교사회에 고집스럽게 동화를 거부하면서 각 분야의 성공을 독차지하는 유대인에 대한 질시가 중세 이래의 멸시에 겹쳐져 유대인 혐오 분위기를 빚어냈다.

특히 1차대전을 전후해 독일 재계를 장악하고 있던 유대인에 대한 의혹이 나치박해의 배경이 됐다.

상재 (商才)에 있어서 유대인과 쌍벽을 이루는 정평을 가진 민족이 중국인이다.

19세기 유럽에서 사회의 밑바닥에 있던 유대인이 뛰어난 현실감각과 종족집단의 단결력으로 성공을 움켜쥐었듯,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맨손으로 중국을 벗어난 화교집단은 동남아 각국과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공고한 위치를 쌓아 올렸다.

소수 외래집단의 특이한 단결력과 특출한 성공이 토착사회의 반감을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화교 박해는 동남아 각국에서 정치.사회적 불안이 있을 때마다 거듭해 벌어지는 정형화된 패턴을 보여준다.

우리 교민이 LA폭동에서 겪은 일도 같은 패턴이다.

앞으로 교민정책이 적극화되기를 기대하면서 교민집단과 현지사회 사이의 관계에 깊은 배려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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