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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뽑는 경쟁 벗어나 가르치는 경쟁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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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학의 경쟁력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다. 대학은 국가와 사회, 세계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최고의 교육기관이다. 국내 대학도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세계 대학과 경쟁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집권 2년째를 맞은 이명박 정부는 ‘자율과 경쟁’ 교육정책에 따라 입시·학사·행정 규제를 단계적으로 풀고 있다.

본지는 3개월간(1월 23일~4월 24일) 총장 14명을 만나 대학 자율화의 현황과 대학별 비전, 고민을 들었다. 대학에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개혁 모델을 소개하자는 취지에서다. ‘대학 경쟁력을 말한다’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인터뷰에서 총장들은 자율화가 미흡하다는 쓴소리와 함께 뽑는 경쟁 위주의 학교 운영에 대한 자성을 쏟아냈다. 대학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16년째 대학 평가를 진행 중인 본지는 총장 인터뷰를 통해 ‘대학 업그레이드’ 모델을 계속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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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손 떼라=대학 자율화의 핵심인 입시 문제는 파장이 컸다. 첫 인터뷰를 한(1월 23일자) 김한중 연세대 총장은 “대입을 규제하는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 외에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2012학년도부터 수시전형은 대학별 고사로 신입생을 뽑겠다”고 말했다. 이어 “본고사를 없앤 후에도 사교육비가 줄지 않았듯 사교육비는 입시 방법과 무관하다”며 “대학별 고사만큼 합리적인 선발 방식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이기수 고려대 총장은 연세대와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그는 “2012학년도부터 수능 기준으로 총정원의 5배수(1만 명)를 뽑아 교장 추천, 사회 봉사, 교내외 활동 경력 등을 반영해 최종 선발하겠다”며 “대학들은 뽑는 경쟁에서 벗어나 잘 가르치기 경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교육 이해 당사자들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공동협의체’를 만들어 입시혁명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두 대학 총장 발언 이후 성균관대·한양대·한국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이 수시모집 계열별 고사 등 새 입시안을 내놓았다. 2012학년도(2011년)에 대입 자율화가 되는 듯했다. 그러자 교육과학기술부는 “완전자율화는 2012년(2013학년도)에 사회적 분위기를 봐서 결정하겠다(2월 13일)”는 입장을 내놨다. 대학들은 “정권 끝 무렵에 자율화를 논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정부를 비난했다. 교과부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한국교총·한국대학교육협의회 등 4개 교육기관이 2월 27일 ‘공교육 활성화를 위한 공동선언’을 하고, 이달 중 선진형 대입 전형 공동선언을 채택할 예정이다.

입학사정관제도 뜨거웠다. 14개 대학 중 한양대·건국대·중앙대·서울시립대·숙명여대·경희대·아주대·경원대 등 8곳이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사정관제는 전국 대학의 트렌드가 됐다. 교과부는 10개 선도 대학을 중심으로 내실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발 과정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염려하고 있다.

◆차별화로 승부한다=김영길 한동대 총장은 "지방의 단점을 실력으로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3무(무전공·무계열·무감독시험) 교육실험을 통해 기업체가 서로 데려가려는 인재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박철 한국외대 총장은 8학기 중 한 학기를 외국에서 이수하도록 하는 ‘7+1’ 제도, 서정돈 성균관대 총장은 ‘상위 1% 명품 맞춤교육’을 대표 브랜드로 소개했다. 서문호 아주대 총장은 “교수의 강의노트를 공개해 가르치기 경쟁을 유도하겠다”고 했고, 이길여 경원대 총장은 “영어인증제를 도입해 회화를 못 하는 학생은 졸업을 시키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한영실 숙명여대 총장은 “유비쿼터스 시스템으로 해외 명문대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하겠다”며 “재학생 100%가 유학 간 것처럼 글로벌 캠퍼스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글로벌화를 생존전략의 핵심으로 판단한 것이다.

학문 간의 벽을 허무는 파격적인 안도 있었다. “한의학과 30%를 문과생으로 뽑아 자연과학과 동양철학을 아우르는 통섭적 리더를 키우겠다”(조인원 경희대 총장), “문과 출신 공학도, 이과 출신 경제학도 같은 융합인재를 기르겠다”(오명 건국대 총장)는 비전이 그것이다. 대학 특성화의 일환으로 이상범 서울시립대 총장은 “도시계획·건축·디자인 분야를 세계 최고로 키우겠다”고 했고,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은 “여성 리더십을 국제 브랜드화하겠다”고 말했다.

◆교수사회 개혁하자=총장들은 “교수 좋은 시절은 다 갔다”며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겠다고 강조했다. 박범훈 중앙대 총장은 “교수 연봉제를 전면 도입해 같은 경력의 교수들 사이에 최대 5000만원의 차등이 나게 하겠다”며 “교수들이 연구와 가르치기 경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강의 평가 결과 상위 50%를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김종량 한양대 총장), “매 학기 베스트 교수 5~10명을 뽑아 포상하겠다”(건국대 오 총장), “강의 평가에서 연속 3회 70점 이하를 받으면 삼진아웃제를 적용하고, 3년 연속 정원 미달 학과는 퇴출하겠다”(경원대 이 총장) 등 의지도 강했다. 215일 동안의 직원 노조 파업에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관철했던 한국외대 박 총장은 “성과급제를 전면 실시해 동기 부여를 하겠다”고 했고, 경희대 조 총장은 “단과대와 대학원에 인사와 예산권을 넘겨 경쟁을 시키겠다”고 했다.

◆사학법 손질하고, 대학은 책임을=사학법은 대학의 발목을 잡는 대표적인 악법이라고 총장들은 주장했다. 전국의 4년제 대학 중 20%가 개방형 이사를 선임하지 않고 일부는 대학평의회도 구성하지 않고 있는데 사학법 적용을 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의 책무성은 모든 이가 동감했다. “취업도 대학 책임이다. 나도 매일 점검한다”(경원대 이 총장), “자율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은 대학의 당연한 의무다”(한국외대 박 총장), “자유롭게 학교를 운영하도록 맡겨 보고, 책무를 따져보자”(연세대 김 총장)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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