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아’ 오자와, 일 민주당 대표직 사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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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정권 교체를 실현하기 위해 그리고 일본과 국민·당, 나를 위해 대표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일본 정계의 풍운아’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가 끝내 낙마했다. 올 3월 초 자신의 자금 관리 조직의 회계 책임자인 정치자금 담당 비서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지 두 달여 만이다.

◆“국가와 국민 위해 결단”=오자와는 11일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권 교체를 실현하는 것이 민주당에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며 나 개인의 최종 목표다. 이를 위해 내가 물러나고 당내 결속을 강화하는 게 급선무”라며 사임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대표직에서 물러난다고 정치를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당 제1선에서 총선에 대비하겠다”며 정계 은퇴는 극구 부인했다. 그래도 그의 얼굴에는 서운함이 가시지 않았다. “사임 결정은 연휴 기간 장고 끝에 스스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앞서 당 간부들에게 전화를 걸어 “정권 교체 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 (사임은) 던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싸우기 위한 선택”이라며 사의 표시를 했다고 한다.

이날 그는 스스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택했지만 “내 손으로 정권 교체의 꿈을 이루겠다”며 강한 투지를 보였던 그로선 당 안팎의 여론에 몰려 쫓겨나는 꼴이 됐다. “부패 정당 자민당을 몰아내고 일본 정치를 일신하겠다”던 오자와의 불법 자금 의혹이 터지자 여론은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 지난해 이후 줄곧 집권 자민당을 크게 웃돌았던 민주당의 지지율도 추락했다.

당 내외의 여론이 계속 악화되면서 결국 오자와는 자진 사퇴의 길을 택하게 됐다. 민주당의 와타나베 고조(渡部恒三) 최고고문은 “여론이 악화하고 있다”며 오자와의 자발적 사임을 촉구했고, 민주당 내에선 “오자와가 대표직을 유지할 경우 차기 중의원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여론이 비등해졌다.

오자와의 후임으로는 대표 경험이 있고 당내 정치개혁추진본부장을 맡고 있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부대표, 간 나오토(菅直人) 대표대행, 오자와를 지지해 온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간사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오자와만큼 정치 경력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이고 깨끗하다는 이미지에다 정책통으로 널리 알려진 오카다의 이름이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다.

◆‘금권정치의 후계자’=1969년 아버지 지역구인 이와테(岩手)에서 자민당 중의원으로 처음 당선된 오자와는 당시 일본 정계 최고 실력자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자민당 간사장으로부터 정치를 배웠다. 40대에 자치상과 자민당 간사장을 지내는 등 일찍부터 정치 능력을 인정받아 실력자가 됐다. 공교롭게도 그가 스승으로 모셨던 다나카와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 가네마루 신(金丸信) 자민당 부총재 등은 일본 정치사에서 금권정치의 대명사로 통한다. 93년 이후 자민당 탈당과 야당 설립, 비자민당 정권인 호소카와 내각 발족, 민주당 합류 등의 오랜 정치 편력 끝에 2006년 민주당 대표에 취임했다. 이후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했고 40년 정치 인생의 최종 목표인 ‘총리’를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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