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당선자 달라진 정책결정 과정…일방통행식 지시 줄고 의견 존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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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는 요즘 말을 철저히 아낀다.

공약개발 과정 등 그때 그때 구체적 의견을 제시했던 대선 이전과는 판이하다는 게 참모들의 일치된 얘기다.

그만큼 신중해졌다는 것으로 "특히 일방통행식 지시는 없어졌다" 는 전언이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 많이 듣는 편이며 실무진의 의견을 가장 중시한다” 는 것. 새 청와대수석진의 여론검증식 인사도 한 예라는 설명이다.

실제 수용결과에 대해선 여러 다른 평가가 나오지만 어쨌든 언론의 반응과 당 (국민회의) 쪽 의견을 귀담아 들었다고 한다.

후보선정은 주로 金당선자 본인의 생각과 김중권 (金重權) 비서실장쪽 천거를 통해 이뤄졌었다.

또 대선 이후 주요 결정은 지금까지는 실무팀의 공식라인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전언이다.

전에는 비선 (비線) 조직 의존도가 높았다.

공식라인의 중심체는 대통령직 인수위와 비상경제대책위 등. 이들이 낸 보고서를 바탕으로 金당선자는 깊은 논의과정을 거친다.

통과를 위해 각 부서는 金당선자를 충분히 납득시킬 논리와 자료를 챙기고 있는데 당선자는 즉답을 자제한다는 것. 결정에 따른 파문을 신경 쓸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얘기다.

경제분야의 창구는 경제 관련 부처와 비대위. 임창열 (林昌烈) 경제부총리와 김용환 (金龍煥) 자민련부총재, 국민회의 김원길 (金元吉) 정책위의장.장재식 (張在植) 의원.유종근 (柳鍾根) 당선자경제고문 등이 주역이다.

외환.금융정책에 관한 리포트는 대체로 수용돼 왔다.

지난달 金당선자와 4대그룹 총수들간 합의된 5개항은 김원길의장 등이 그동안 金당선자가 피력해온 대기업정책관을 정리한 것. 金당선자와 박태준 (朴泰俊) 자민련총재가 검토해 별다른 이견없이 'OK'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나중에 '빅딜' 부분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잡음이 일자 “본질이 흐려진다” 며 불쾌해 했다는 얘기다.

인수위쪽도 마찬가지. 새 정부가 추진할 '1백대 과제' 선정이 대표적 예다.

실무진의 검토 결과를 보고받은 뒤 “대선 공약과 차이 나는 대목을 조정하라” 고 주문했을 뿐 대부분 수용했다고 한다.

국민회의.자민련 8인 중진회의에서 조정작업을 한 뒤 10일 잠정 확정안을 보고할 때도 내용에 관한 보완지시는 거의 없었다는 것. 그러나 이같은 과정을 넘기기 위해 실무팀은 수많은 고생을 해야 한다.

金당선자 스스로가 각 분야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가진데다 외선 (外線) 참모라인을 통해 당일 보고받을 내용과 관련된 문제점을 미리 짚어 보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사안에 따라 해외인맥.채널까지 가동한다는 것. 때문에 몇몇 자문역은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했다가 퇴짜를 맞은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경우 그 보고자에게 다시 일을 맡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비서진의 얘기다.

그래서 “金당선자에게 보고하는 과정은 식은땀이 난다” 고들 한다.

林부총리가 金당선자의 신임을 받는 것과 관련, “외환사정과 경제위기에 대한 첫 보고 때 솔직한 상황설명과 잘못의 시인, 그리고 충실히 대안을 제시한 게 점수를 딴 것 같다” 고 측근은 말한다.

정부조직개편안중 '예산권 대통령 직속화' 결정도 사전에 실무진을 상대로 한 金당선자의 까다로운 '청문회' 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김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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