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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마비·암 이겨내고 기적을 살다 간 ‘소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3호 04면

‘소녀’. 그를 만나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말한다. 그처럼 맑은 감성을 지닌 어른을 본 적이 없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그 소녀는 장영희(사진) 서강대 교수다. 우리 시대 대표 수필가이기도 하다. 9일 암 투병 끝에 5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 별세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2009)
갓난아기 때 소아마비를 앓았다. 후유증으로 항상 목발에 의지한다. 사회는 그를 ‘1급 장애인’으로 분류한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그가 세상을 저주했을 것이라면 오산이다. 오히려 ‘정상인’과는 다른 체험을 유머와 위트로 승화, 문학적 재능으로 버무렸다. 수필과 신문 칼럼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줬다. 2001년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받고 완치됐지만 2004년 다시 척추암 선고를 받고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이듬해 봄 다시 강단에 복귀했다. 그의 삶은 살아온 기적이었고, 사람들에게는 살아갈 기적이었다.

『내 생애 단 한번』(2000)
“무미건조하고 습관화된 삶보다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해야 제맛”이라는 게 그의 인생관이다. 삶이라는 책에서 한 페이지만 찢어낼 수 없다. “우리들 각자가 저자인 삶의 책에는 절망과 좌절, 고뇌로 가득 찬 페이지가 있지만 분명히 기쁨과 행복, 그리고 가슴 설레는 꿈이 담긴 페이지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재소자나 입원 환자들이 더 뜨거운 반응을 보낸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2005)
그는 영문과 교수다. 아버지(고 장왕록 서울대 명예교수)의 뒤를 이었다. 1975년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85년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생각하는 갈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 등을 번역했다.

중·고교 영어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했으며 한국번역문학상과 올해의 문장상 등을 수상했다.

독신이며 유족은 모친 이길자 여사와 오빠 장병우 전 LG오티스 대표, 언니 영자씨와 여동생 영주·영림·순복씨 등 네 자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이며, 발인은 13일 오전 9시. 02-2227-7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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