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 개혁 지금이 기회다]1.방송…시장독점 깰 '대체채널' 절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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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IMF한파와 권력교체등으로 가요계도 구조조정 바람을 맞고있다.

최근 여론을 의식한 방송의 가요프로 연쇄폐지에 이어 일본가요까지 개방을 앞두고있어 국내가요의 경쟁력을 높여야한다는 지적이 높다.

가요를 구성하는 3대 축인 방송.음반.공연을 각각 둘러싼 거품을 해부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알아본다.

'널 잊지 못할 거야' 를 부른 할리퀸은 데뷔 이래 몇달째 음반이 팔리지 않던 무명 록그룹이었다.

그러다 MBC드라마 '별은 내가슴에' 연출자 눈에 띄어 주인공 안재욱의 백밴드로 반짝 출연하면서 대번 신세를 고친다.

단 1회 안재욱의 입으로 '널…' 이 방송됐을 뿐인데도 이튿날부터 음반이 팔려 수만장이 나가는 발판이 된것. TV는 힘이 세다.

한 가수의 생사여탈을 결정하는 가공할 수준이다.

때문에 가요 제작자들은 자신의 음반을 방송에 띄우기 위해 치열한 로비전을 벌여왔다.

이 로비전의 승리는 방송의 구미에 맞는 춤.얼굴과, 인맥.자금력을 갖춘 소수의 댄스그룹 제작자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이는 한국가요를 댄스만이 독주하는 '파시즘' 문화로 이끌었고 음반제작비를 훨씬 상회하는 '홍보비' 소문은 방송과 가요계의 유착 의혹을 불러왔다.

어느 댄스그룹의 노래 경우 지난해 여름 순위 프로 수위에 올랐지만 팔린 음반은 수만장에 불과, 순위의 신뢰성에 의문을 자아낸 예. 반면 실력은 있되 방송인맥.재정이 열악한 비 (非) 댄스 가수들은 순위프로를 비롯, TV쇼 접근이 극히 어려운 실정이었다.

IMF시대를 맞아 이같은 가요계에도 개혁의 물결이 일고있다.

개혁의 초점은 '홍보비' 로 상징되는 거품을 걷고 양질의 다양한 음악들이 고루 전파를 타도록 방송과 관계를 정립하는 것. 최근 방송3사는 '가요톱텐' '인기가요50' '수퍼선데이' 등 댄스중심의 쇼.순위프로를 일제히 폐지함으로써 가요계 구조조정을 선도했지만 그 한계도 뚜렷하다.

댄스그룹 '추방' 은 H.O.T와 더불어 가장 잘 나간다던 댄스그룹 젝스키스조차 방송출연을 포기하고 라이브그룹을 선언하게 만들 만큼 위력을 보이긴 했다.

하지만 가요의 다양한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또다른 파시즘적 발상이란 비판을 받고있다.

댄스만 독주하는 방송이나 댄스가 전무한 방송 모두 문제인 것이다.

충분한 준비없이 폐지부터 서두른 탓에 후속프로가 대안으로서 의미를 제시하지 못하는 점도 비판거리다.

MBC '인기가요 50' 후속인 '젊은 그대' 는 가요 순위가 여전히 등장하고있어 순위쇼 폐지의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한 가요전문가는 "방송의 개혁노력은 분명 평가해줄 부분이지만 시청률 지상주의와 독과점 구조에 둘러 싸인 방송3사가 주도하는 가요 개혁은 필연적 한계를 안고있다" 고 진단한다.

근본적 처방은 공중파3사에 국한되온 가요의 홍보경로를 수요에 맞게 충분히 늘려 다양한 음악이 소개될 길을 트는 데 있다는 것. 전국적 규모의 공중파방송을 신설하기 어려운 여건에서 가요계는 대안으로 일개 도시를 가청권으로 하고 장르.세대별로 특화된 독립 소출력 FM방송 (인디라디오) 을 제시하고있다.

미국처럼 다양한 음악이 꽃피는 나라는 도시마다 수십곳씩 경쟁하는 인디라디오가 든든한 혈관이 되고있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는 "음악전문 라디오방송이 전무하고 가요의 중앙집중이 유달리 심한 국내현실에서 한자릿수 인원과 수억원대 금액이면 설립 가능한 인디라디오는 가요 다양화의 좋은 대안" 이라고 말한다.

인디라디오같은 '대체채널' 의 미덕은 공중파 방송에서 설 땅을 잃은 댄스가수들이 케이블 음악전문 채널에서 활동 기회를 찾고있다는 사실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

가요계에선 "차기정부는 방송을 정치적 매체 아닌 문화적 매체로 인식해 소출력에 한해서 FM방송 설립을 자율화해줄 것" 을 바라고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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