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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암투병 소아마비 수필가 장영희 교수 별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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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 중이던 수필가 장영희(서강대 영미어문·영미문화과) 교수가 9일 오후 1시 별세했다. 57세.

고인은 소아마비로 두 다리가 불편했지만 밝고 열정적인 삶의 자세를 수필과 신문칼럼으로 표현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영미 시를 쉬운 언어로 소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1년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하고 완치됐으나 2004년 다시 척추암 선고를 받고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이듬해 봄 다시 강단에 복귀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줬다.

암 치료 중에도『문학의 숲을 거닐다』『생일』『축복』 등 집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다시 간에 암이 전이됐지만 마지막까지 창작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투병 중 집필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곧 출간된다.

고인은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고교 영어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한국번역문학상·올해의 문장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한국의 대표적 영문학자인 고 장왕록 서울대 명예교수의 딸이다. 독신이며 유족은 모친 이길자 여사, 오빠 장병우 전 LG 오티스 대표와 언니 영자씨, 여동생 영주·영림·순복씨 등 네 자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이며 발인은 13일 오전 9시. 02-2227-7550.

구희령 기자

소아마비와 암 이겨내고 기적을 살다 간 '소녀'

‘소녀’.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말한다. 그처럼 맑은 감성을 지닌 어른을 본 적이 없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그 소녀는 장영희(사진) 서강대 교수다. 우리 시대 대표 수필가이기도 하다. 9일 암 투병 끝에 5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샘터사, 2009)
갓난아기 때 소아마비를 앓았다. 후유증으로 항상 목발에 의지한다. 사회는 그를 ‘1급 장애인’으로 분류한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그가 세상을 저주했을 것이라면 오산이다. 오히려 ‘정상인’과는 다른 체험을 유머와 위트로 승화, 문학적 재능으로 버무렸다. 수필과 신문 칼럼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줬다. 2001년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받고 완치됐지만 2004년 다시 척추암 선고를 받고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이듬해 봄 다시 강단에 복귀했다. 그의 삶은 살아온 기적이었고, 사람들에게는 살아갈 기적이었다.

#『내 생애 단 한번』(샘터사, 2000)
“무미건조하고 습관화된 삶보다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해야 제 맛”이라는 게 그의 인생관이다. 삶이라는 책에서 한 페이지만 찢어낼 수 없다. “우리들 각자가 저자인 삶의 책에는 절망과 좌절, 고뇌로 가득 찬 페이지가 있지만 분명히 기쁨과 행복, 그리고 가슴 설레는 꿈이 담긴 페이지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나 병원에 있는 환자들이 더 뜨거운 반응을 보낸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샘터사, 2005)
그는 영문과 교수다. 아버지(고 장왕록 서울대 명예교수)의 뒤를 이었다. 1975년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85년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생각하는 갈대』『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스칼렛』등을 번역했다. 중ㆍ고교 영어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했으며 한국번역문학상과 올해의 문장상 등을 수상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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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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