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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권 다툼 15년 … 심야 집단 난투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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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4월 27일 오전 서울 강남 리버사이드호텔 앞에서 입점업소 세입자들이 법원의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철조망과 드럼통으로 출입구를 봉쇄하고 있다.

5일 새벽 1시10분. 5t 트럭 3대에 나눠 탄 230여 명의 건장한 젊은이들이 서울 서초구 잠원역 근처 공터에 내렸다. 이들은 죽창과 쇠파이프 등을 손에 들었다. 일부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이들이 향한 곳은 인근의 리버사이드호텔이었다. 150여 명이 호텔 현관을 에워싸고 출입을 통제하는 가운데 마스크를 쓴 80여 명의 침투조가 출입문을 밀치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 안에 있던 15명의 경비 용역이 침입을 막으려 했지만 온몸을 폭행당한 채 쫓겨났다.

서울 도심에서 일어난 심야 난투극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진압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리버사이드호텔 내 입점업소들에 대한 법원의 강제집행을 놓고 갈등을 빚던 업체들이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이었다. 230여 명을 동원한 곳은 지난달 27~28일 강제집행으로 호텔에서 쫓겨난 A건설업체였다. 호텔을 지키고 있던 쪽은 법원에 강제 집행을 신청한 호텔의 소유주 B건설업체였다. 경찰은 8일 폭력 등의 혐의로 이모(58)씨 등 7명을 구속하고 A건설업체 대표 등 3명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폭력에 가담한 40여 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나머지 가담자들에 대한 검거에 나섰다.

◆오랜 쟁탈전에 호텔 폐허로=리버사이드호텔이 문을 연 것은 1981년이었다. 한남대교 남단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여서 나이트클럽과 웨딩홀, 고급 룸살롱 등이 잇따라 들어섰다. 하지만 객실 영업이 부진해지면서 호텔 소유권을 빼앗기 위한 쟁탈전이 시작했다.

92년 처음으로 부도를 내 호텔은 창업자 김모(작고)씨의 손을 떠났다. 이후 두 차례 주인이 바뀐 끝에 94년 A업체의 방계 회사 격인 C사가 240억원에 낙찰받았다. 하지만 그해 말 또다시 부도가 났다. 이후 유찰이 계속되다가 2005년 B업체가 487억원에 낙찰받았다.

소유권을 둘러싼 분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A업체는 ‘인테리어 공사대금’을 내세워 호텔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호텔 내 업소에 대해 인테리어 공사를 한 A업체는 "공사대금 272억원을 못 받은 대신”이라며 22개 업소에 대해 임대권을 행사해 왔다. 하지만 B업체는 최근 제기한 건물 인도 소송에서 승소해 A업체를 몰아낼 명분을 얻었다. B업체는 지난달 27일 집행관을 앞세워 강제집행에 들어갔다. A업체와 입점업소들은 용역 200여 명을 고용해 집행에 반발했지만 7개 업소에 대해 집행이 완료됐다. 이후 나머지 업소들의 집행 여부를 두고 양측이 맞서왔다.

인근 부동산업자들에 따르면 호텔 부지와 건물 등 부동산 가치는 시가 1500억원에 달한다. 현재 호텔은 객실 영업이 중단된 상태다. 입점 업소 대부분은 문을 닫았고 안내 데스크엔 호텔 직원 대신 경비 용역들이 진을 치고 있다. 한 호텔 관계자는 “소유권 다툼에 호텔 하나가 폐허가 됐다”며 “누가 주인이 되든 호텔 경영을 정상화시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5일 심야 집단 난투극의 무대가 된 리버사이드호텔 건물. [중앙포토]

◆인터넷 등으로 용역 모집=A업체는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쫓겨나게 됐다”는 점을 이번 호텔 진입의 명분으로 삼았다. 경찰에 따르면 A업체의 홍모 상무는 북파공작원 단체의 지회장을 맡고 있던 이씨에게 “도와달라”고 연락했다. 이씨는 전과 13범으로 전국의 철거 현장 등에 개입해 왔다고 한다. 그는 경호회사 경호실장 이모(30)씨를 홍 상무에게 소개했다. 이들은 4일 오전 ‘300명의 용역을 모집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호텔을 접수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했다고 한다. 이들은 대규모 용역 동원이 가능한 이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한편 인터넷 용역 모집 사이트에 모집 공고도 냈다. 특정 용역업체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 용역과 무직자들까지 몰려들었다. 일사불란한 연락망으로 채 하루도 안 되는 사이에 230여 명이 모였다.

경찰 관계자는 "폭력조직이 조직원을 모으려 해도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는 힘들다”며 "그만큼 용역들의 폭력 행사가 자주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모여든 용역들은 1인당 6만~10만원씩을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용역 동원비는 4~5단계를 거치며 용역들에게 나눠졌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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