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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의 힘 ! 확 달라진 구립 어린이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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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구립 어린이집 재계약 심사가 까다로워지자 새 커리큘럼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신수동 신석어린이집 어린이들이 발레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 [마포구청 제공]

구립(區立) 어린이집은 보육료가 싸 서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구청이 설립해 학교·복지재단·종교기관 등에 위탁 운영하는 어린이집의 보육료는 만 4세 기준으로 월 17만2000원을 내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다. 저소득층에게는 보육료를 면제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시설이 낡고 보육의 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3년마다 자동적으로 계약이 갱신되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의 구립 어린이집 32곳 가운데 10년 이상 운영하는 곳이 18곳이나 된다. 운영자들은 ‘내 것’이라 생각하고 타성에 젖는 경우가 많다. 원장이 자주 자리를 비우는가 하면 몇몇 종교단체는 구립 어린이집을 ‘부설 유아원’으로 생각해 종교 교육에 치중하기도 한다.

마포구가 이런 관성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11명의 위원으로 어린이집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어린이집을 맡으려는 법인의 운영 포부, 지원 계획과 원장의 자질을 따지기 시작했다. 단독 응모한 경우라도 70점 이하면 탈락시키기로 기준을 세웠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2곳, 올 5월 6곳의 구립 어린이집 위탁기관이 바뀌었다. 10년간 한 종교단체가 운영하던 한 어린이집은 1월부터 덕성여대가 맡고 있다. 대학 측은 유아교육학 박사 학위 소지자를 원장으로 파견하고, 매월 유아교육과 교수가 교육과정을 체크하고 있다. 유아교육과 학생 3명이 장애아동을 위해 매주 두세 차례 일대일 교육을 하는가 하면 학부모를 위한 ‘좋은 부모 되기’ 특강도 할 계획이다.

재계약 심사가 엄격해지면서 기존 어린이집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구립 망원어린이집 민선희(46·여) 원장은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바꾸었다. 그리고 밤 12시까지 아이를 돌보기 위해 보육교사 1명을 추가로 채용했다. 늦게 퇴근하는 학부모를 위해서다.

5년 동안 이 어린이집에 아들(5)을 맡겨온 안동수(40)씨는 “올해 들어 보육교사들이 가베 놀이교육, 찰흙을 이용한 창의성 수업 등 새로운 교육방법을 도입하는 것이 눈에 띈다”며 만족해했다.

그러나 변화는 쉽지 않았다. 공개입찰 방침이 정해지면서 지난해 하반기 마포구청은 항의 방문과 전화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어린이집 운영자와 학부모들이 진정서를 제출하고 시위까지 벌였다. 하지만 교육서비스의 질이 높아지면서 지금은 반대가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말 구청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한 학부모 김정미(35·여·대흥동)씨는 “어린이집의 운영 주체가 바뀌어 여섯 살 난 딸이 혼란을 겪을까봐 걱정했다”며 “그러나 바이올린·발레 등 특별활동이 강화돼 지금은 만족한다”고 말했다.

신영섭 마포구청장은 “운영이 부실한 어린이집을 퇴출시키는 ‘소극적 경쟁’이 아닌, 최고의 보육서비스를 하는 사람에게 계속 운영을 맡기고 인센티브를 주는 ‘적극적 경쟁’으로 바꿔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는 어린이집 위탁을 공개 경쟁 방식으로 바꿔 지난해 말 재계약 대상 5곳 중 3곳의 운영자를 교체했다. 4월 조례를 바꾼 성동구는 기존의 위탁 업체와 한번 더 계약하도록 유예기간을 둔 뒤 완전 경쟁체제로 바꿀 예정이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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