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선자금 불법 드러나도 수사 안 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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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검찰이 7일 대선자금은 수사를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자 후원자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으로 향하고 있다. 천 회장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사실상 후원회장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천 회장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대선자금이 드러날 수 있다. 그래서 검찰은 미리 대선자금을 피해가겠다는 선을 그은 셈이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수사를 하기도 전에 미리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대선자금 부분을 수사하지 않겠다는 검찰의 입장은 궁색하다. 이번 수사는 어디까지나 박 회장에 대한 수사이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범죄만 다룬다는 취지라고 한다. 검찰은 최고의 수사기관이다. 당연히 수사 과정에서 범법의 혐의가 감지되면 끝까지 추적해 진실을 밝히고, 범법 사실이 드러날 경우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는 것이 검찰의 역할이다.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의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검찰은 지난 2002년 대선자금을 2년 뒤인 2004년 수사했다. 당시에도 출발은 대선자금 수사가 아니었다. SK해운의 비자금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정치자금이 드러나자 수사를 확대했다. 야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선자금은 물론 여당인 민주당 노무현 후보, 당시 현직 대통령의 대선자금까지 추적했다. 한나라당의 대선자금 823억원이 확인됐고, ‘차떼기’라는 낙인이 찍혔다. 현직 대통령이 사용했던 민주당 대선자금도 114억원으로 집계됐다. 그 결과 노 대통령의 최측근 안희정·최도술씨 등이 줄줄이 구속돼 실형을 살았다. 대검 중수부가 대규모 수사팀을 구성해 9개월에 걸쳐 광범한 돈줄을 추적한 끝에 이룬 성과다.

5년 전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는 많은 찬사를 받았다. 검사가 팬으로부터 사인공세를 받을 정도였다. 지금도 민심은 마찬가지다. 대선자금은 성역이 아니다. 법대로 수사하고 수사 결과를 법대로 처리하는 게 검찰의 책무다. 검찰은 오히려 5년 전보다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당시 중수부가 수사 과정에서 많은 찬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미흡했던 점도 드러났다. 오늘의 중수부는 그때의 부족했던 점을 곰곰이 되짚어 가면서 보다 신뢰받는 검찰상 확립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