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사회심리학]2.취향도 형성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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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취향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고 잘라 말했다.

예컨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느냐는 문제는 순전히 개인의 '입맛' 이기 때문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 하지만 철저히 개인적 영역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음악의 취향, 즉 기호 (嗜好) 도 사회화 과정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에 사회계층과 직업은 물론이고 성격.성별.나이.교육수준.경제수준.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허버트 간스.테오도르 아도르노.피에르 부르디외 등 사회학자들도 그런 이론을 펼친다.

가령 클래식 음악회에 가기 위해서는 경제적.시간적 여유와 함께 음악적 지식, 즉 교육적 배경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상류층이 아니면 좀처럼 어릴 때부터 클래식을 가까이하기가 어렵다는 것. 하지만 경제적 부와 문화적 소양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부르디외는 저서 '구별짓기' 에서 문화자본과 경제자본을 구분하면서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문화적 소양이 높은 계층은 바흐의 '평균율' '푸가의 기법' , 비발디의 '사계' 등 바로크 시대의 기악곡을 좋아하고, 돈은 많지만 문화적 소양이 부족한 사람들은 비제의 '아를의 여인' ,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 ,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등 춤곡이나 오페라.묘사음악을 좋아한다는 것. 같은 클래식이라도 바로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한국가곡을 좋아하는 사람은 보수적 취향의 소유자다.

또 오페라를 즐기는 사람은 교향곡을 즐기는 사람보다 더 상류층에 속하지만 음악적 취향은 보수적이다.

최근에는 사회적.경제적 지위 뿐만 아니라 미디어도 음악취향 형성에 큰 몫을 하는 편이다.

지난 90년 영국 BBC - TV가 월드컵 중계방송 주제가로 푸치니의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를 선택한 후 오페라 아리아 음반이 불티나게 팔렸다.

TV와 라디오는 대중의 음악취향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만들어간다.

방송에서 음악 프로그램의 선정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이에 따라 좋아하는 음악도 바뀐다.

젊은이보다 성인 층에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들으면 들을 수록 반복을 통한 이해가 축적되기 때문. 60대 노인이 시끄러운 헤비메탈을 듣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시끄러운 음악은 청력 (聽力) 이 왕성한 청소년들이 즐길 수 있는 일종의 '특권' 이다.

또 청소년들이 시끄러운 음악을 즐기는 것은 평균결혼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억압된 성적 욕망을 드럼의 비트에 실어 해소하려는 성향 때문. 특히 대중음악의 경우에서는 청춘 시절에 들었던 노래를 추억의 노래로 평생 간직하는 경우도 있다.

89년 미국 '소비자연구' 지에 발표된 홀부르크와 쉰들러의 논문에 따르면 늙어서도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청소년기가 끝나고 성년기로 접어드는 23세 전후에 즐겨들었던 노래. 그렇다면 해방둥이인 53세 한국인이 노래방에서 눈감고도 부를 수 있는 가요는 지금부터 30년전인 68년에 유행했던 '흑산도 아가씨' '가슴 아프게' '누가 울어' '돌아가는 삼각지' 일 가능성이 높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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