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수지 흑자행진 "아직 안심은 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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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상수지가 계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것도 한달에 30억달러대의 대규모 흑자를 두달째 냈다.

이때문에 일부에선 흑자기조가 자리잡혔다는 성급한 기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불안하다.

아직은 내용이 충실치 않은 엉성한 흑자라는 것이다.

우선 수출이 생각만큼 확확 늘지 않고 있다.

국제수지 기준의 수출증가율은 97년 1월 ( - 4.1%)에 이어 지난 1월에도 - 3.6%로 연속 마이너스였다.

환율이 오르고 임금이 안정되면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진다.

겉으로만 보면 수출이 잘 돼야 하는데도 부진한 편이다.

이는 아직 환율 상승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론상 환율 상승이 수출증가로 이어지려면 3~6개월은 지나야 한다.

여기에다 동남아의 외환위기 및 일본의 경기침체로 우리 주요 수출시장이 죽을 쑤고 있는 것도 수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출이 제자리걸음인데도 경상수지 흑자가 난 것은 수입이 더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원자재 수입이 줄어든 것은 은행의 무역금융지원이 위축된데 따른 영향이 크다.

은행들은 신용장을 매입해줄 외화자금이 모자라기도 했지만 주로 국제결제은행 (BIS) 의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무역금융지원을 외면해왔다.

이런 식으로는 곧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물론 수입 축소로 몇달간 더 흑자를 낼 수는 있다.

또 원자재 재고를 감안하면 수입이 한두달간 더 위축돼도 수출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수출입이 모두 현격히 줄어드는 과정에서의 흑자는 반가운 일이 아니다.

수입 원자재의 40%는 수출상품을 만드는데 사용돼 고스란히 재수출된다.

수입 원자재가 모자라면 수출할 상품을 만들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언젠가는 수출이 한계에 이르러 흑자 행진도 멈추게 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원자재 수입 감소가 이 상태로 상반기중 계속되면 수출도 벽에 부닥치게 된다" 고 말했다.

이에 따라 수출과 수입을 동시에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금융경색을 푸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무역금융지원이 이뤄져 수입이 늘면 경상수지 흑자는 오히려 다소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원자재나 자본재 수입이 늘면 2~3개월 후에야 수출이 늘기 때문이다.

또 흑자가 나더라도 지난 두달간과 같은 대형 흑자를 기대할 수는 없다.

게다가 외채 이자 상환에 따른 무역외수지 적자도 늘어나게 된다.

한은은 올해 무역의 적자폭을 70억달러 안팎으로 예상하고 있다.

무역수지는 1백억달러를 넘을 전망이므로 경상수지 흑자는 전체적으로 30억달러를 웃돌 것이라는 계산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환율상승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더라도 우리나라가 한달에 낼 수 있는 경상수지 흑자폭은 최대 10억~15억달러 정도로 보고 있다.

국내 경제규모나 수출경쟁력을 감안해 그렇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지난 두달간 30억달러대의 경상수지 흑자는 비정상이라는 얘기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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