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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행정조직 살빼기…효율성 잣대로 과감한 통폐합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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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민간기업의 구조조정과 함께 정부조직 개편 작업도 한창이다.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 등장으로 공무원 사회의 기본 틀도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방 행정조직은 95년 지방자치 시대가 본격 개막됐는데도 불구, 더욱 비대해져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여론이 높다.

이에 지방행정 조직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등을 진단해 본다.

편집자

◇ 실태 = 지난달 3일 대전서구 (구청장 李憲求) 는 언론에도 알리지 않고 동사무소 3곳의 문을 열었다.

지난해 말 내무부 승인을 받아 갈마.월평1.월평2동 등 3개동을 분동 (分洞) 한 데 따른 후속조치였다.

서구청은 “이들 3개 동사무소의 주민등록 인구가 4만명을 넘어 (지난해 말 현재 4만4백96~4만1천3백96명) 주민 편의를 위해 분동이 불가피했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 상당수 시민들은 “새 정부가 읍.면.동사무소 폐지를 거론하고 있는데다 부산.창원 등지에선 대동제 (大洞制) 를 도입, 인구가 7만명이나 되는 동이 생겨나고 있는 추세에서 동사무소를 늘리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는 반응이다.

시대 역행하는 '分洞' 서구청이 3개동을 늘림에 따라 추가로 드는 인건비만 해도 연간 7억1천여만원에 달한다.

이와 관련, 대전시 한 관계자는 “정치.경제 여건으로 볼 때 오히려 인구가 적은 동을 통합하는 게 순리인데도 서구 출신 李모의원이 구청 공무원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내무부에 압력을 넣어 분동을 성사시킨 것으로 안다” 고 귀띔했다.

95년 1월 옛 나주시와 나주군이 통합돼 단일시가 된 전남나주시는 옛 나주시 인구가 3만9천여명 (97년말 현재)에 불과한데도 무려 동사무소를 11개나 운영하고 있다.

1개동만 빼곤 모두 내무부가 권장하는 통폐합 대상 (인구 5천명 이하) 이다.

특히 부덕동의 경우 1천4백여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전남도가 직영중인 롤러스케이트장 (광주광산구송정동) 엔 현재 도 소속 정규 공무원 7명이 배치돼 있다.

그러나 입장료 등을 포함한 스케이트장의 연간 수입이 6천여만원에 불과, “배보다 배꼽이 크다” 는 지적이 많다.

전국 각지엔 지방자치단체 뿐 아니라 중앙부처가 설치한 특별지방행정기관도 있다.

각 지방검찰청과 지방경찰청을 비롯, 지방노동청 (노동사무소).지방환경청.우체국.어촌지도소 등이 바로 이들이다.

특별지방행정기관은 법인격을 가진 지역단체로서 소관 사무를 자체적인 책임 아래 처리할 수 있는 '법률적 능력' 을 가진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중앙부처의 분리된 기관에 불과하다.

따라서 예산과 인사권이 모두 소속 중앙부처에 있다.

단지 중앙부처가 처리해야 할 업무를 특정 지역에서 처리하는 것에 불과하다.

권한 여전히 중앙집중 97년말 현재 보건복지부.환경부.통계청 등 12개 정부 부처는 정부조직법 (3조1항)에 따라 전국에서 모두 7, 119개의 특별지방행정기관을 운영 중이다.

◇ 문제점 및 개선방안 = 현재 지방자치단체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조직상의 문제점은 ▶조직 비대화▶부서 사이의 업무 중복▶유휴인력 과다▶인력 배치의 불합리 등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공통적으로 나오는 개혁 메뉴가 '정부 (지자체) 조직 감량' 이었지만 공무원들의 내부 반발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95년 7월 부임한 단체장중 상당수도 조직 진단을 통해 공무원 수와 조직을 대폭 줄이겠다고 공언했지만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다.

경기개발연구원이 지난해 경기도청내 1백89개 계 (係) 의 단위업무를 종합분석한 결과 비슷한 복지업무를 담당하는 사회복지과.부녀복지과.여성정책실은 통합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연구원은 또 “잠업사업소의 경우도 70가구밖에 안되는 도내 잠업농가를 위해 10여명의 직원이 연간 5억여원의 예산을 쓰는 것은 낭비” 라며 통폐합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지방조직 '無風지대' IMF한파 이후 민간기업에서는 정리해고제까지 거론되며 평생 직장을 위해 몸바친 직원들이 하루 아침에 쫓겨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도 지자체엔 아직도 '놀고 먹는 공무원' 이 상당수에 이른다.

특히 대부분의 시.도가 운영중인 공로연수제의 경우 정년을 1년 앞둔 고위 (2~4급) 공무원들에게 '사회적응 훈련' 이란 명목으로 출근하지 않는데도 매달 급여외에 효도휴가비 등 1인당 평균 3백여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한편 특별지방행정기관은 대부분 지자체와 업무가 중복되거나,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업무를 맡고있어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대구의 경우 중소기업청은 대구시 산업국, 보훈청은 대구시 사회복지여성국, 환경청은 대구시 환경관리과와 업무가 중복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충북도내엔 세무.현업 (철도.우체국) 등 모두 3백79개 특별지방행정기관이 있다.

이와 관련 충북도는 96년 “농림.환경.노동.건교부 등 8개 부.처 산하 12개 기관 (직원 4백95명) 을 폐지, 업무를 지자체에 넘기면 연간 1백10억원의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 고 정부에 건의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얼마전 행정개혁에 성공한 뉴질랜드처럼 '효율성' 이라는 잣대로 불필요한 조직과 인원, 절차 등을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준호·이해석·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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