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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친한파가 없다]현황…IMF 닥치자 전부 "나몰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미국에 친한파가 없다'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가 터지자 국내 곳곳에서 이같은 한탄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환란 (換亂)' 을 극복하기 위해선 IMF 배후에 버티고 있는 미국의 정책이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 돼야 하나 미국 정책실무자들을 움직일 우리정부의 정책도, 사람도 없어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는 자성의 소리다.

미국 정책당국에 대한 우리의 국가홍보와 로비의 문제점.대책 등을 짚어본다.

◇ 뇌물중심 로비 = 최근 한국을 방문했던 제임스 슐레진저 전 미국방장관은 박태준 (朴泰俊) 자민련총재를 만난 자리에서 의미있는 말 한마디를 건넸다.

“미국내 친한인사들을 키우시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크게 두가지다.

한국인들은 IMF사태를 바라보는 미국의 입장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고 동시에 IMF체제를 빠른 시일안에 극복하기 위해 미국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는 고언이다.

76년과 77년 미국 정가를 흔들었던 박동선 (朴東宣) 사건으로 잠깐 돌아가보자. 당시 박정희 (朴正熙) 정부는 미 정계의 전.현직 의원 20여명에게 50만~1백만달러의 금품과 선물을 지급했다.

미국과의 각종 현안을 원활히 풀어나가기 위해 벌였던 로비였다.

그러나 이같은 시도는 뇌물파동으로 비화돼 한국은 뇌물로 미국정치인을 사는 저질국가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후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의 대미 (對美) 로비는 국내 저명인사의 미국내 지인들을 상대로 한 개별적인 뇌물로비 외에는 총체적인 마스터플랜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 부정적 시각 = 우리의 대미 로비 부재는 미국의 한반도정책이 정확한 정보나 합리적 기준으로 수립되고 시행되지 않는다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다.

미국의 한반도전문가인 미기업연구소 (AEI) 연구원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박사는 그의 저서 '통일로 가는 한반도' 에서 이를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는 '지난 40년간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실수 투성이' 라는 말로 미국의 대한 (對韓) 정책을 비판했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이해부족은 '가공할 만한 수준' 이라고 꼬집은 그는 동시에 이같은 현실은 “한국의 대미 로비가 전무, 아니면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반증한다” 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일부 미국 정책당국자들은 아직도 일본의 항복으로 한국이 해방된 것인지, 계속 점령상태에 있는 것인지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미국 경제계의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과 거래하는 미국 기업인들을 한국문제에 발벗고 나설 또다른 부류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대다수는 지난 20여년간 한국정부의 비관세장벽에 누차 골탕먹은 경험 때문에 한국은 '제2의 일본' 이란 부정적 인상을 여전히 갖고 있다.

게다가 안보분야에서 우리를 지지해왔던 이들조차 북한핵문제처리 과정에서 한.미관계가 서먹해지자 우리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들 상당수는 당시 양국간 마찰의 원인을 한국정부의 대북정책 혼선에서 찾고 있다.

래리 닉시 미의회입법조사국 (CRS) 선임연구원같은 보수계 인사도 “한국정부의 시책이 미국에서 인기없는 상황에선 한국을 대변하는 데 한계가 있다” 고 털어놓았다.

워싱턴=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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