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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위해 사흘 기다린 장성택…노무현 정부 거부로 바람맞고 돌아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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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門前成市)지만 정승이 죽으면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옛말이 맞더라.”

김대중(DJ) 정부의 실세였던 민주당 박지원(67·얼굴) 의원이 권력 무상을 토로했다. 베이징 주재 한국특파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다. 그는 4일부터 중국을 방문 중인 김 전 대통령 수행차 베이징을 찾았다. 박 의원은 “4년6개월간 감옥 생활을 하면서 건강이 악화돼 술을 못 마신다”면서도 약을 먹고 나서 폭탄주를 대여섯 잔 마셨다. 그러면서 ‘(여당이 될 민주당을)위하여’라고 건배 구호를 붙였다.

박 의원은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출마와 관련, “오늘내일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겠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번 방중 배경은.

“김 전 대통령이 연초 중국 방문 계획을 세웠다. 2개월쯤 전에 최종 확정됐다. 처음엔 중국사회과학원(DJ는 명예교수 자격)을 방문하려 했지만 중국 측에서 인민외교학회로 격상시켜 줬다. 청융화 주한 중국대사가 극진히 예우하겠다고 하더니 시진핑 부주석 면담이 막판에 성사됐다.”

-중국이 DJ를 파격적으로 환대했다.

“호텔에 묵으려 했는데 국빈관인 댜오위타이 10호각 전체를 내줬다. DJ가 미국이나 구미에 가면 일부 강연료를 받는다. 중국은 강연료는 안 주더라(웃음). 과거 대만이 DJ에게 거액의 상금을 주겠다고 했는데 DJ가 중국을 배려해 거절했다. 중국은 이런 사실도 알고 있더라.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대만에 자주 가기 때문에 중국이 초청 안 하는 것 같다.”

-중국 정부의 이명박(MB) 정부에 대한 시각은.

“중국 지도자들을 만나 보니 한국 정부가 일본과 지나치게 밀착하는 데 대해 우려하더라.”

-베이징과 인연이 각별한데.

“2000년 4월 8일 베이징에서 북한의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만나 6·15정상회담 합의문을 작성했다. 회담이 끝나고 북측 제안으로 일본 식당에서 북측이 만들어준 타이타닉주를 폭탄주로 마셨다.”

-남북 경색을 풀기 위한 첫 단추로 MB가 북한에 양보해야 하나.

“6·15선언과 10·4선언은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사인한 문건이다. 10·4선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대선을 2개월 앞두고 급하게 한 거다. 14조5000억원의 비용이 들어가는데 MB가 쉽게 받겠나. 다만 9조 1항(‘수정할 사항은 수정한다’)을 활용해야 한다. MB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수정해야 한다.”

-2003년 3월에 남북 정상회담이 노무현 정부의 거부로 무산됐다고 폭로했는데.

“당시 장성택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베이징에서 3일간 기다리다 바람 맞고 돌아갔다. 그때 노 전 대통령이 특사를 보냈으면 6·15도 잘 지켜졌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와 차별화하려고 2003년 회담을 포기했다. 10·4선언 중에 6·15선언이 5회 언급됐고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자고 했는데 노 전 대통령이 안 지켰다.”

-남북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나.

“2012년 강성대국 목표를 내세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오바마 미국 대통령 모두 대화를 필요로 할 것이다. 2000년 10월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직후에 김 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하지 않은 것이 ‘천추의 한’이다.”

-노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방문 조사하고 불구속하고 재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물리적으로 보면 30년은 더 살아야 하실 분이다. 실패한 전직 대통령으로 30년을 살기는 정말 힘들 것이다. 그래서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고 재판을 하지 말라고 제안했다. 내가 볼 때 검찰이 불구속할 것으로 예상한다. 노 전 대통령은 법정 가면 검사들과 싸울 것이다. 그게 전 세계에 보도되면 나라 망신이다.”

-YS가 DJ의 심기를 건드리는 발언을 자주하는데.

“YS는 기회 있을 때마다 DJ를 비판하지만 우리는 대응 안 한다. 거짓말은 YS가 더 많이 한다. YS는 한 번에 180도를 바꾼다. DJ는 논리적이어서 하루에 1도씩 바뀐다. 상도동에 갔더니 YS가 나에게 “DJ가 왜 너만 좋아하느냐”고 묻더라. 그러면서 귓속말로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려 주겠다. 김대중이 빨갱이다”고 하더라. YS는 정말 못 말린다.”

-DJ의 총애를 받은 비결은.

“한마디로 말해 아부도 능력이다. 나는 항상 대안을 제시하고 함께 토론했다. 비서는 단순 보고자가 되면 안 된다. 팩트와 대안을 함께 갖고 있어야 한다. 모든 보고서는 A4 한 장을 넘으면 안 된다.”

-오랫동안 DJ 비서를 했는데.

“야당 시절 내가 비서 할 때 진짜 권력이 있었다. 모든 것을 비서를 통해야 했기 때문이다. 집권하니 채널이 많아져 권력이 디바이드(분할)되더라. 곁에서 보니 DJ를 형님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김상현 전 의원과 이용희 의원뿐이더라.”

-김 전 대통령의 이번 방중 와중에 건강 관리는 어떻게 했는가.

“원래 일주일에 3회 정도 신장 투석을 하신다. 한 번에 4시간30분이 걸려 힘들어 하시지만 김 전 대통령은 TV도 보고 여비서가 책도 읽어준다.”

-세상 인심의 변화를 언제 가장 절실하게 느끼나.

“천당 살다가 지옥 갔다 다시 세상으로 나온 느낌이다. 내가 정치해 보니 언론인과 공무원은 의리가 있지만, 정치인과 기업인은 필요하면 오고 필요 없으면 안 온다. 세상 인심 변화를 생각하면 자살하지 않고 못 견딘다. 감옥에 있을 때 김기섭 전 안기부 기조실장을 만났다. 그 사람이 6공의 금융 황태자 이원조씨와 나눈 얘기를 들려주더라. 김 전 실장이 자신이 몰락한 뒤 ‘알고 지내던 1만 명 중 1명이 찾아왔다’고 하니까 이원조씨가 ‘너는 인생 잘 살았다. 나는 10만 명 중에 1명’이라고 했다더라.”

-정국 전망은.

“MB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이 민주당으로 안 가고 박근혜 전 대표에게로 간다. 지금 여의도의 최고 파워는 박 전 대표다. 한나라당엔 정몽준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도 있다. 민주당엔 이런 스타들이 안 보인다. 민주당이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서 손학규 전 대표를 수원에 나오게 해야 한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손 전 대표가 경쟁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 난 요즘 서울시장(에 내보낼) 외부 인사를 영입 중이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서울·경기·인천 등 8개 광역 단체에서 승리할 것이다.”

-DJ와 노무현, MB 정부의 다른 점은.

“국민의 정부 1기 내각엔 정치인·교수와 시민단체·관료를 삼분해 중용했다. 정치인은 현실적이고, 교수는 이상적이고, 공무원은 안정을 중시한다. 노 전 대통령은 시민사회단체에 치우쳤다. MB는 교수집단만 중용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꼭 성공해야 하지만 국가정보원이 권력을 남용하면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권력이 무섭다는 걸 아는 사람은 집권 2년째가 되면 보따리를 싼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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