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돋보기] 택시가 옳은가, 승객이 옳은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택시 불친절을 둘러 싸고 승객과 해당 택시기사의 이색 ‘글 싸움’이 붙었다. 그 현장은 천안시 홈페이지 인터넷신문고 게시판. 이 곳에선 시민들이 불친절 경험을 올리면 시에서 처리 결과를 담아 답변을 다는 게 보통이다. 이번은 사정이 달랐다.

승객 민모씨가 택시 관련 불만의 글로 올린 건 지난달 3일이었다. 주 내용은 택시가 U턴하지 않고 돌아 가려 했다는 점과 그래서 곧 내렸는데 요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해당 택시기사 김모씨가 같은 달 28일 맞대응 글을 올린 것이다. 승객의 잘못된 글 인터넷 조회수가 높아지는 걸 그대로 보고 있을 순 없다면서….

“고발당한 택시기사입니다. (손님이 청수동) LG아파트에서 탄 곳은 목적지와는 반대 방향이었습니다. U턴할 수 없는 곳에서 택시가 U턴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손님이 하차를 원해서 하차하시는데 왜 택시기사가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까. 저는 정당히 시청에서 허가받고 택시 일을 하며, 택시는 과속·불법U턴· 신호위반 등을 해도 되는 건 아닙니다. 또한 손님이라고 해서 기사에게 불법을 종용해서도 안되고요.”

도대체 청수동 LG아파트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우선 승객이 올린 글을 찬찬히 보자.

“천안의 택시는 친절한 기사님을 찾아보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손님인 제가 인사를 하고 택시를 타서 목적지를 말해도 기사님은 대답도 없이 갑자기 출발을 합니다. 차를 타자마자 기분이 상하기 일쑤입니다.” 이에 대해 기사 김씨는 ‘답글’ 첫 부분에서 “인사를 먼저 못한점은 잘못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라고 썼다.

민씨는 이어 “4월 3일 저녁 8시 20분쯤 LG아파트 택시 승강장 앞에서 용곡동 세광 2차 아파트를 가려고 택시를 탔습니다. 그 앞에 U턴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음에도 U턴하지 않아 여쭤보니 그 기사분은 현대아파트를 지나 남파오거리까지 돌아가려고 하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럼 내리겠다’고 했더니 50m도 지나지 않았는데 ‘요금을 달라’며 안 좋은 소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돈을 주고 내려 다른 택시를 탔습니다.”

최대 쟁점은 U턴이었다. 청수동 LG아파트를 답사해 봤다. 아파트 입구 택시 승강장에 택시 서너 대가 대기 중이었다.<사진> 기사 말대로 용곡동 방향으로 U턴할 곳은 없었다. 승객이 잘못 안 것이었다. 세광 2차아파트에 가려면 청수동 경남 아너스빌 앞 도로를 지나야 한다. LG아파트에서 900m 거리다. 현대아파트와 주공4단지를 거쳐 돌아가려면 2.2km다. 2.4배의 거리인데다 신호등 서너개를 통과해야 하고 교통 체증도 겪어야 한다.

일반적 승객의 경우 그 먼거리를 돌아 가려 하진 않을 것이다. 민씨는 불편하더라도 건널목을 건너 건너편에서 택시를 잡아야 했다. 왜 아파트 입구 승강장에서 택시를 탔을까. 불법 U턴을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직한 택시’를 만났던 것이다. 그 택시는 도중 하차했음에도 곧이 곧대로 요금을 물렸다. 택시기사의 행동엔 전혀 불법성은 없다. 각박한 인심만이 느껴질 뿐이다.

시 교통과가 올린 답변은 엉뚱하게 부당요금 징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부당요금으로 인하여 적발 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위반으로 20만원의 과태료에 처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귀하의 제보 내용만으로는 해당차량의 구체적인 불법행위가 성립되지 않아 행정처리가 곤란합니다.” 문제의 핵심을 애써 비껴나가려 한 듯한 느낌이 든다.

조한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