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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속 백미 구간 ② 팝 아티스트 낸시 랭과 봉화산 코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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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철쭉이 능선을 뒤덮은 봉화산. 지난달 28일 낸시 랭과 함께 오른 산은 철쭉이 만개하지는 않았다.

봄이다. 산마다 울긋불긋 꽃 대궐이다. 국토의 줄기 백두대간도 꽃 몸살을 앓는다. 어디를 가도 눈부신 계절, 고심 끝에 결정한 이달의 코스는 봉화산(919.8m)이다.

이맘때면 분홍 철쭉이 능선을 온통 뒤덮는, 대표적인 ‘봄산’이다. 지리산과 덕유산 사이를 잇는 백두대간 능선 위에 있는 이 산을 기점으로 경남 함양과 전북 장수·남원이 갈라진다.

이달 산행엔 팝 아티스트 낸시 랭(29)이 동행했다. 그는 한 번도 산에 오른 적이 없다며 겁부터 먹었다. 산행이라기보다 산책에 가깝다며 겨우 설득했다.

연분홍 산 위에서 알았다. 낸시 랭은 분홍이 참 잘 맞는다는 걸.

글=손민호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낸시 랭, 산에 들다

낸시 랭은 주황색 상의 위에 노란색 윈드 파카 차림으로 나타났다. 어깨 위에 얹은 고양이 인형이 눈에 띄었다. “코코 샤넬, 인사 드려. 야옹~.” 낸시 랭은 어디를 가도 이 인형과 동행한다고 했다. 고양이 인형을 어깨에 메고 산에 오르는 그를 보며 ‘걸어다니는 팝 아트’라 불리는 까닭이 짐작됐다.

그는 감기 기운이 있었다. “산에선 감기 똑 떨어져요. 공기 좋은 데서 땀 흘리고 나면 싹 나아요.” 이 말에 그는 금세 웃었다. “정말이죠? 하나도 안 힘들다고 해서 큰맘 먹고 왔는데, 땀 많이 흘려야 하나요?”

봉화산 정상으로 가는 나무계단에 선 낸시 랭과 이종승 승우여행사 대표.

그러고 보니 낸시 랭과 산의 조합은 어딘지 어색했다. 정적인 산보다 동적인 바다가 적합해 보였다.

“저도 바다가 더 좋아요. 제가 비키니를 좋아하잖아요. 산에선 비키니를 입지 못하니까.”

비키니는 낸시 랭을 상징하는 일종의 오브제다. 그는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속옷 차림으로 바이올린 연주를 해 단박에 주목을 받았다. 그 퍼포먼스의 제목은 ‘초대받지 않은 꿈과 갈등 : 터부 요기니 시리즈’. ‘터부 요기니’는 이후 그녀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다.

#철쭉 터널에 갇히다

산행은 복성이재(550m)에서 시작했다. 백두대간이라 쓰인 이정표가 산속 오솔길을 향해 나 있었다. 산행을 안내한 이종승 승우여행사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여기는 남원 땅. 오른쪽으로 고개를 내려가면 ‘성리’란 마을이 나오는데 흥보가 실제로 살았다고 해서 흥보마을이라 불리지.”

“여기 풀은 먹을 수 있어요?” 낸시 랭은 풀에 호기심을 보였다. 독초와 약초가 비슷하게 생긴 관계로 산에선 나물은 알려고도 하지 말고 알아서도 안 된다는 설명을 듣고,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가 붙들고 있는 화두가 바로 ‘경계’에 관한 것이다. 선과 악, 성녀와 창녀, 자아와 타자, 일상과 예술…. 낸시 랭의 캐릭터 ‘요기니(Yogini)’ 역시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이중적 존재다.

30분쯤 오르니 마침내 능선이다. 눈 아래 능선이 온통 철쭉꽃 천지였다. 어른 키보다 웃자란 철쭉은 능선을 따라 길게 터널을 이루었다. 연분홍 꽃밭 안에서 그는 아이처럼 신나게 뛰어놀았다.

걸어다니는 팝 아티스트 낸시 랭이 산행길에 고양이 인형 코코 샤넬과 포즈를 취했다.


낸시 랭=1979년 미국 뉴욕 출생. 미국 국적이어서 낸시 랭이란 이름만 유효하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현재 직업은 팝 아티스트다. 2003년 뉴욕 타임스퀘어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터부 요기니 시리즈’란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데뷔했다. 사회 금기를 깨는 돌발 행동으로 종종 구설수에 오르지만 막상 본인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갤러리 안에 갇혀 있는 미술을 넘어 생활 속 미술을 추구한다. 9월에 열 번째 개인전을 연다.

산행 정보=대전~통영 고속도로를 타고 장수 분기점에서 익산∼포항 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장수 IC에서 빠져나와 19번 국도를 따라 20여 분 달리면 봉화산 아래 주차장에 도착한다. 거기서 산을 끼고 난 길을 돌면 산행 기점 복성이재가 보인다. 복성이재에서 치재~봉화산~광대치까지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함양군 백전면 대양리로 내려오는 코스가 가장 많이 알려진 루트다. 5시간 가까이 잡아야 하는 산행이다. 이번엔 이 코스의 절반만 갔다. 복성이재에서 치재를 거쳐 봉화산 기슭까지 올라갔다가 치재로 다시 내려와 19번 국도 주차장에서 산행을 마쳤다. 철쭉 능선만 골라서 탄 것이다. 원점 회귀 코스가 아니어서 산행 뒤 차량을 다시 가지러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지금은 봉화산 철쭉 축제 시즌이다.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가 9, 10일 봉화산 당일 산행을 떠난다. 4만5000원

[이달의 산행 TIP] 봄철 산행의 적, 자외선

5월 산행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적은, 산불도 아니고 낙상도 아니다. 자외선이다. 자외선은 고도가 해발 1㎞ 상승할 때마다 20%씩 증가한다. 산행에서 자외선을 조심해야 하는 까닭이다.

특히 봄엔 산행으로 인한 피부 트러블이 심하게 일어난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근육과 마찬가지로 피부도 겨울을 지내며 잔뜩 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봄 산행은 여름 산행보다 우거진 숲과 그늘이 적어 자외선을 피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뜨거운 여름이 아니라고 방심하고 산을 오르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자외선을 피하는 산행 요령을 알아본다. 선크림을 바르는 건 물론이고 자외선 차단 효과가 있는 제품을 골라야 한다. 예를 들어 단순히 태양을 가리는 역할을 했던 반투명 선캡도 UV 코팅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의류의 경우 날씨가 따뜻해졌다고 맨살이 드러나는 옷을 입기보다 소매가 긴 얇은 옷을 입는 게 낫다. 이때도 자외선 차단 기능성 원사를 사용한 제품을 눈여겨보자. 밝은 컬러의 옷이 어두운 컬러보다 자외선 차단율이 뛰어나며, 땀 등으로 옷이 젖으면 자외선 차단 효과가 절반으로 떨어지니 흡습·속건(빨리 마름)의 기능도 따져 봐야 한다.

자료 제공=LG패션

◇ 알립니다
낸시 랭씨가 ‘고 안재환씨 빈소에 입고 간 의상’에 관련해 week&에서 했던 발언이 본래 뜻과 다르게 나갔다며 관련 기사의 삭제를 요청했습니다. 낸시 랭씨는 "이 기사로 인해 인터넷에서 수많은 악성 댓글이 달렸고, 이번 일로 크게 상처를 받았다"며 "이와 관련해 길게 얘기한 내용이 축약되는 과정에서 본의가 잘못 전달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본지는 악플의 진원지가 된 부분을 일단 삭제하고, 관련 내용을 다음주 week&에서 상세히 밝히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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