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판교 호가, 분당 집값 넘어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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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에 분양면적 145㎡형 아파트를 갖고 있는 이모(45)씨는 요즘 부동산 중개업소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자주 받는다. 11억원에 사겠다는 손님이 있으니 팔라는 것이다. 이씨는 “한동안 판교 아파트 시장이 많이 침체해 마음이 상했는데 지금은 지난해 말보다 호가가 2억원 이상 올라 다행”이라며 “갖고 있으면 돈이 더 될 것 같아 당분간 지켜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판교 주택시장이 많이 달아올랐다. 청약열기가 일었던 판교신도시가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2년 이상 내리막길을 걷더니 요즘 갑작스레 수요가 늘며 값이 크게 뛰었다. 판교에선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분양권 웃돈이 2000만~5000만원이었으나 지금은 주택형을 가리지 않고 2억~3억원이 붙었다. 판교 호박공인 김성규 대표는 “지난 연말 웃돈 3000만~4000만원이던 휴먼시아어울림 144㎡(이하 분양면적)가 2억6000만원의 웃돈이 붙어 거래됐다”고 말했다. 2월 입주한 풍성신미주 109㎡도 최근 2억5000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팔렸다. 판교 OK공인 박향미 사장은 “매수 문의는 꾸준한데 거래할 수 있는 매물이 적어 값이 강세”라고 말했다.

판교 집값이 상승세를 타면서 분당 아파트 매매가를 추월했다. 2006년 당시 분양가(채권액 포함)는 분당 매매가의 80% 선이었다. 판교 125㎡는 6억1000만원(채권손실액 포함)에 분양됐는데 지금은 8억원 이상을 호가한다. 수내동 일대 같은 주택형보다 5000만~1억원 가량 비싸다. <그래프 참조>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입주율이 낮아 썰렁하던 판교는 최근 집값이 오르면서 집들이가 부쩍 늘었다. 2월 초 완공한 풍성신미주(1147가구)는 3월 말까지 50% 정도 입주했으나 지난달 말에는 입주율이 90%에 육박했으며, 이지더원(721가구)도 집들이가 지지부진하다 3~4월 급속히 늘면서 입주율이 96%에 이르렀다.

이처럼 몇 달 사이에 판교 아파트 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부동산 경기가 많이 나아지면서 상승세를 탈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져서다. 부동산 시장의 경색이 심화되다 올 초 강남권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오름세를 타면서 불씨가 판교로 번진 것으로 풀이하는 전문가가 많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최근 강남권 등지의 아파트값이 오르자 분당보다 판교에 관심을 갖는 투자수요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특히 경기가 좋아지면 입지여건이 좋은 판교의 가치가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분당 수요자들은 실거주 차원에서 판교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서현동 굿모닝공인 민종규 대표는 “판교 입주가 시작되자 분당 아파트를 팔고 이사를 가려는 수요가 갑자기 많아졌다”고 말했다. 분당 이매동 하나공인 홍수영 대표는 “돈을 좀 더 보태 주거여건이 비슷한 판교의 새 아파트를 사려는 실수요자가 많다”고 말했다.

판교 오름세를 신중하게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국민은행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판교의 가치가 높은 건 사실이지만 지금의 강세는 매물 부족에 따른 일시적인 호가상승일 수도 있다”며 “실물경기가 꾸준히 좋아져야 판교든 분당이든 시장이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분당의 한 공인중개사는 “워낙 매물이 적은 판에 일부 중개업자끼리 호가를 올리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이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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