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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이공계] 2. 교육 현장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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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서울의 한 공고 학생들이 선반 실습을 하고 있다. 공고들도 대학 진학 때문에 실습은 뒷전으로 밀리는 추세다. [신동연 기자]

이공계 대학.대학원은 요즘 '콩나물 교실'이다. 교수 1인당 학생수가 평균 40명에 달해 선진국의 2배 수준이다.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여건을 마련하지도 못하면서 정원만 잔뜩 늘린 탓이다. 또 이공계 전문대는 4년제 대학과 실업고 사이에서 제 역할을 찾지 못하고 있고, 산업현장의 기능인력을 양성해야 할 공고는 대학 입시준비 교육기관으로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이공대-전문대-실업고'로 이어지는 이공계 교육 분업체제도 흔들리고 있다.

◇부실한 대학교육=서울의 S공대에 다니는 최모씨는 "실험 실습 같은 것은 수강생 중 대표로 몇 명만 하는 경우가 흔하다"면서 "전자학과 학생이 전기회로판에 땜질 한번 해보지 않고 졸업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산업기술재단이 최근 기계.전기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생과 졸업생 53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3%가 "실무 능력을 키우는 이공계 교육을 원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학생수에 비해 교수가 적다 보니 교수 1인당 연간 강좌 수는 5~6개에 달해 외국의 1~2개에 비해 월등히 많다. 시간 강사가 맡는 강좌가 교수가 맡는 것보다 20%정도 더 많기도 하다.

수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도 이공계 교육의 문제로 꼽힌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기업들의 수요가 줄어든 학과도 과거 정원을 유지하는 반면, 인력이 시급히 필요한 첨단공학분야 정원은 늘어나지 않는 등 수급불균형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시중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이공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공계 학부 정원을 사회 수요에 맞게 조정하거나 감축하는 한편 대학에 설치된 전공분야를 재정비해야 한다"며 대학의 체질 개선을 강조했다.

◇방향 못 잡는 전문대=중견 기능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는 이공계 전문대들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4년제 대학에 도입된 실업계고 졸업생 특별전형으로 전문대는 설 곳조차 없어졌다고 아우성이다. 올해 전국의 전문대가 뽑지 못한 인원(5만1896명) 중 45%(2만3505명)가 공업계열 학과에서 나왔을 정도다. 지방의 K전문대. 이 학교는 올해 정원의 절반만 채웠다. 특히 이공계열 학과는 정원의 40%를 간신히 메웠다.

학교 관계자는 "4년제 대학들이 전문대에 입학할 자원을 빼앗아가는 '약탈적'상황"이라며 "전문대가 산업현장의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해 이색학과를 만들어도 4년제 대학이 비슷한 학과를 곧바로 만들어 전문대를 고사시킨다"고 말했다.

시류에 따라 마구잡이식으로 개설되는 학과들도 문제다. 2000년 정보기술(IT) 붐을 타고 문을 연 한 지방대의 컴퓨터정보학부는 올해 없어졌다. 첫 해에는 정원(170명)에 10명 부족한 160명이 지원했으나 지난해엔 지원자가 10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첨단 학과라는 신소재공학부는 지난해 100명 모집에 단 한명의 학생만 지원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IT 분야가 뜬다고 정부가 관련 학과를 만들도록 장려하자 너도 나도 관련학과를 개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3학년도를 기준으로 전체 전문대 모집정원(28만5922명)의 25.8%(7만3690명)가 IT 관련 학과 인원이다.

◇입시기관된 실업고="우리 학교로 오세요. 100여개 4년제 대학과 모든 전문대로 향하는 넓어진 진학 기회…."서울의 한 실업계 고교가 중3 학생들을 대상으로 배포한 입학 안내서다. 지난해 이 학교 졸업생 중 35%가 대학에 진학했다. 이 학교 3학년생인 이모군도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면학반'이다. 일반계 학생처럼 EBS 수능 강의도 듣고 있다. "취업요? 옛날 일이죠. 취직원서가 들어오긴 하지만 중소기업 뿐인 데다 그나마 전공과 무관해요. 그래서 대학을 가려고 해요." 이런 가운데 과거 기업체에 나가 받던 실습교육은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다.

특히 올해부터는 수능시험에서 실업계 계열 시험이 생겼다. 특별전형을 통해 4년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이 더 넓어진 것이다. 2004학년도부터 4년제 대학 전체 정원의 3%(9411명)를 공고 등 실업계 고교생으로 선발하도록 했다. 실업고가 대학 진학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 서울지역 공고 졸업생 10명 중 5명은 일자리를 구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대학 등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만 해도 8 대 2의 수준을 유지하던 취업과 진학 비율이 5 대 5로 바뀐 것. 박동근 경기기계공고 실과부장은 "실업고 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실습을 나가도 기업체에서는 단순작업에만 쓰고 있다"며 "더구나 대부분 3D(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직종이다보니 상당수 학생들이 대학에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시래(팀장), 염태정.심재우.강병철(산업부), 김남중.강홍준.하현옥(정책기획부), 김방현(사회부)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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