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구 장애 체험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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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 장애 체험의 날
“희망의 버튼을 눌렀어요”

칠흑 같은 어둠. 손을 내밀어 이리저리 더듬어보지만 그저 허공을 헤집을 뿐, 한 걸음 내딛기조차 막막하다. 언제 고꾸라질지 모르는 두려움에 모골이 송연하지만 방법이 없다. 누군가 나에게 방향만이라도 얘기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각 장애인용 음성 길 안내시스템 선봬
지난 28일 중랑천변. 기자는 직접 암흑의 세계를 경험했다. 노원구청(구청장 이노근)이 마련한 장애체험의 날 행사에 참여한 것. 이날 행사에는 특별한 기기가 등장했다. ‘보이스 내비(Voice Navi)’라고 불리는 시각장애인용 음성길안내 시스템이다. 차량용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연상시키는 이 기기가 과연 시각장애인의 길안내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내심 믿기지 않는 가운데 체험이 시작됐다.
 
스마트폰의 목적지 버튼을 누르니 음성안내가 시작됐다. “목적지까지 2㎞ 남았습니다. 직진입니다.” 안대를 한 탓에 걸음이 영 어색하다. 중랑천변을 걷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긴장된다. ‘이러다 물에 빠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아니나 다를까 몇 걸음 떼자마자 중랑천이 옆에 있어 위험하니 방향을 바로잡으라는 경고 음성이 나온다. 허우적대며 한참 걸은 것 같은데 겨우 50m갔단다. 등에선 식은땀이 흐른다. 너무 힘을 준 나머지 다리가 후들거리기까지 한다. 이렇게 체험을 끝내야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체험에 같이 참여한 세종 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부 오윤진(41) 교수가 말을 걸어온다. “생각보다 힘들죠? 천천히 걸으세요.” 실제 시각장애인인 그는 보이스 내비를 들고 앞서 걷다 한참 뒤처진 기자를 기다려 준 것.
 
스마트폰으로 안내… 상표 등록 서둘러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갑다. 옆에 누군가 있다는 생각에 마음에 놓여서 그런지 음성 안내가 귀에 들어온다. 그때까지 발걸음에만 신경 쓰느라 음성안내는 뒷전이었다. 3m 앞에 공사가 있어 길 상태가 고르지 않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제야 몇 걸음 앞이 내다보이기 시작한다. 아니, 머리 속에 그려진다. 발걸음도 한결 편해졌다. 나란히 걷던 오 교수는 “시각장애인에게 이 시스템은 대단히 편리한 기기임에 틀림없다”고 반겼다.

그는 지난해 미국에서 이와 비슷한 기기를 체험하면서 “우리나라도 이런 제품을 만들어 보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그러면서도 “아직 3m 내의 가까운 거리는 정확한 안내가 어려워 길에서 벌어지는 각종 돌발 상황을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안내 정보를 보다 세밀하게 저장할 수 있도록 더욱 첨단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노근 구청장은 “이 기기는 현재 상표등록중이다. 대기업 등에 의뢰해 기술을 보완하면 곧 상용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맹아학교에 우선 보급해 새로운 기기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 겠다”고 밝혔다.

◆ 보이스 내비 시스템= 위성을 통해 사용자의 위치를 추적하고 오차를 줄이는 방식의 보정위성항법시스템(DGPS)과 문자음성자동 변환 장치인 TTS엔진, 음성녹음 기능인 보이스 레코더를 결합해 만든 것이다. 작동원리는 시각장애인이 휴대한 단말기(스마트폰)에서 목적지 버튼을 누르면 위성으로부터 경로에 따른 음성 안내 서비스를 받는 형태다. 단 처음 가는길이라면 반드시 보호자가 옆을 따르면서 각종 장애물이나 방향 등 보행에 필요한 정보를 입력·저장해야 한다.

프리미엄 김지혁 기자 mytfac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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