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섭의 와/인/토/크 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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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섭의 와/인/토/크④
따끈한 족발에 레드와인, 입 안에 퍼지는 즐거움

나는 족발이 좋다. 가벼운 주머니로도 풍족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어감 때문인지 싫어하거나못 먹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보통 그 맛의 향연을 함께 느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데 그저 징그럽다는 이유로 못먹을 음식 취급 당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족발의 진수는 바로 젤라틴 성분의 고소함에 있다. 잘익힌 말랑말랑한 젤라틴 성분은 그 쫄깃쫄깃한 질감과 목넘길 때의 부드러움, 깊이 있는 맛 때문에 미식가들에겐 참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권해주던 생굴 맛의 깊이를 어른이 되고 알게 된 것과 같다.족발은 세계적으로도 많은 지역에서 즐기는 음식이다. 흔히 요리의 대국으로 칭하는 프랑스에서도 족발은 훌륭한 요리의 소재다. 뚤르즈식 족발요리나 노르망디식 족발 요리는 우리나라에 프랑스식 족발요리로 유명한 ‘르삐에’라는 레스토랑을 통해 익히 소개된 바 있다.독일에서는 아이스바인(Eisbien)과 슈바이네 학센이 유명하다. 독일 호프집에 가면 맥주 안주로도 인기가 많은 요리다. 와에서 언 포도로 만든 달콤한 와인 아이스바인(Eiswien)과 발음이 같아 혼돈할 수 있지만 알파벳이다르다. 또 스페인 족발요리로 유명한 하몽을 빼놓을 수없다. 하몽은 우리의 족발요리와 달리 소금절임을 한 다음 말려서 만들기 때문에 맛의 유형은 달라도 세계인들이 즐기는 족발요리의 하나이다.

족발에 대한 사설이 긴 이유는 이번주 ‘와인 & 안주프로젝트’의 테마요리가 족발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족발을 좋아해 가끔 점심시간을 이용, 장충동 족발 전문점에 들르곤 한다. 그럴 때면 당연히 레드와인을 가지고간다. 따끈한 족발에 레드와인. 그야말로 환상적인 궁합이다. 족발 한 점을 입에 물고 부드러운 레드와인을 한잔 들이키면 입안에서 퍼지는 족발의 깊은 풍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깊은 맛의 감동이 밀려온다. 어떤 품종의 레드와인과 궁합이 좋은지는 따질 필요도 없다.그저 약간의 떫은 맛이 있는 레드와인이면 족했다. 그래도 그 중 잘 어울리는 와인을 꼽으라면 비냐마이포 까르미네르가 좋겠다.

우선 족발에 너무 비싼 와인을 고르면 그야말로 돼지목에 진주 목걸이가 되기 십상이다. 자체 완성도가 높은와인은 족발의 비릿함을 감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따라서 과일 맛이 풍부하면서도 적당히 떫은맛이 있는 칠레나 스페인의 가벼운 와인이 좋다. 스페인 와인이라면 템프라니요 품종이나 가르나차 품종의 와인도 좋다.주의점도 있다. 음식을 먹으면서 잔을 기울이다 보면입에 묻은 요리의 성분이 와인 잔에 묻는다. 아무래도 족발은 식으면서 돼지냄새가 나기 마련. 이 냄새가 와인과 잘못 만나면 아주 비리게 느껴진다. 시간을 두고 즐기기 위해서는 와인의 잔을 중간에 바꾸는 것이 좋다.족발에 소주도 물론 좋다. 하지만 발상을 전환해 와인과 맞춰보는 일탈도 가끔은 필요하다 .거기서 약간의 특별함을 느끼는 것도 일상을 벗어나 나만의 여유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김진섭 = KWS(한국와인협회) 사무차장을 거쳐 현재 코리아 와인 챌린지 심사위원LG상사 트윈와인 마케팅 팀장을 역임하고 있다. 월간 CEO에 와인 이야기를 연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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