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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깻잎도 허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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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는 라틴어에서부터 유래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푸른 풀'이라는 뜻의 '허바(herba)'라는 단어가 전해지면서 변형되어 현재의 허브(herb)가 되었다는 것. 하지만 지금은 '푸른 풀'이라는 의미 보다는 '향기가 나는 풀'정도로 여겨져서 주로 '서양에서 들여온 향기나는 식물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때문에 보통은 허브를 무조건 '이국(異國)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허브'라는 단어를 듣자 마자 당장 떠오르는 것이 까페의 메뉴판에 등장하는 '로즈마리'나 샐러드에 곁들이는 '바질'정도이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허브를 음식에 사용하는 경우, 음식의 개성을 살려주고 맛을 내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점을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채소 중에서도 '허브'라 불러야 할 것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싱싱한 해물로 매운탕을 끓여보자. 무와 꽃게, 새우와 미더덕을 풍성하게 넣고 고춧가루, 청양고추까지 송송 썰어 넣어 보글보글 얼큰하게 끓인다. 꽃게와 새우가 빨갛게 익어 진국이 우러나고 살캉한 무가 적당히 익어 달달한 맛까지 더해지면 거의 완성에 가까워 진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뭔가 빠진 듯 허전한 기분. 상 위로 올라가는 마지막 순간에는 미나리와 쑥갓을 숭덩숭덩 썰어서 탕 위에 수북히 올려야 한다. 마치 태국의 쌀국수를 상에 올리기 전에 태국의 허브인 고수(코리앤더)를 듬뿍 올리는 것과 비슷하달까. 이렇게 미나리와 쑥갓을 올려 향이 퍼져야 해물의 비릿함도 가려주고 정확히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해물탕만의 국물 맛을 낼 수가 있다.

비슷한 상황은 춘천 닭갈비 집에서도 연출된다. 커다란 철판에 고구마, 양배추, 양파, 닭다리살, 양념장을 올려서 지글지글 굽다가 거의 다 익어갈 때 쯤, 뭔가 빠진 듯한 기분이 든다면 여지 없이 '깻잎'이 안 들었기 때문일거다. 깻잎이 들어가서 참깨나 참기름과는 또 다른 향을 더해줘야 '맛있다'소리가 절로 나는 닭갈비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 또한 통닭바베큐오븐구이에 로즈마리나 바질잎을 뿌려 구워야 맛이 한층 다채로워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허브는 각국의 개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식재료이다. 그런 뜻에서 미나리, 쑥갓, 깻잎은 '한국의 허브'다. 냉이, 쑥, 취나물, 달래등 향이있는 나물 역시 마찬가지다. 고수 하면 쌀국수, 오레가노하면 피자가 떠오르지만 전세계의 셰프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 두 가지 허브를 사용하여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이름을 붙인다. '태국의 향을 가미한~', '이탈리안 스타일의~'이라고.

우리만의 '코리안허브'를 알리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혹시 또 모를일이지 않은가. 4년째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스페인의 '엘불리'에서 '코리안허브로 맛을 낸~'이라는 새로운 메뉴를 선보일지도.

김은아 칼럼니스트 eunahstyle@naver.com